400년 전 이탈리아의 한 남자가 집 근처 벌판에서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달과 행성,별들을 올려다보는 순간 천문학 혁명이 시작됐다. 1609년 11월30일 밤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과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당시 그는 깨닫지 못했겠지만 그날 밤 천문학의 새 장이 열렸다. 그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처음 관측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엔과 국제천문연맹은 2009년을 '세계 천문의 해'로 선포했다.

지구 밖의 지형을 처음 본 갈릴레이는 이렇게 기록했다. "달 표면은 매끄럽지도 균일하지도 않으며 많은 철학자들이 믿었듯 둥글지도 않다. 달은 불균일하며 거칠고 계곡과 산들로 가득 차 있어서 지구의 표면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

몇 주일 뒤 그는 목성을 관측했다. 그리고 지구 아닌 다른 행성을 공전하는 위성들의 '천상의 춤'을 발견하고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다는 확신,그리스인들의 믿음처럼 모든 것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이어 금성과 토성,태양의 흑점,수백만 개의 별을 보았고 이를 펜화로 그렸다. 그것은 '인류가 눈가리개를 벗어던진 것'과 같았고 사고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힌 순간이었다. '저편에 새로운 우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

망원경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우주로의 대항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세계 천문의 해' 공식 도서로 출간된 《하늘을 보는 눈》에는 갈릴레이 망원경부터 거울을 이용한 반사 망원경,전파로 우주를 '듣는' 전파 망원경,지구 궤도상에 떠서 우주를 바라보는 우주 망원경까지 놀라운 기술 진보의 과정이 200여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다. 68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DVD도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류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는 혼자인가?'

이 책과 함께 나온 《갈릴레오》도 흥미진진하다. 영국의 과학 저술가 마이클 화이트는 400년 동안 바티칸 문서보관소에서 잠자다 공개된 갈릴레오 관련 문서를 분석한 뒤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을 받은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더 중대한 이단적 죄목'으로 교회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 '죄목'은 갈릴레오가 1623년 출간한 《시금사》(試金師 · 금의 함량을 분석하는 사람)의 원자 이론이었다.

갈릴레오는 물질이 '원자'라는 한 가지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이는 만물엔 '본질과 형상'이라는 이중적 속성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식 물질 이론이 오류일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은 빵과 포도주가 성찬식을 통해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환'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성찬식 교리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갈릴레오의 원자 이론은 이 성찬식 교리를 부정할 위험이 있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1632년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두 가지 주요한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의 한 부분 때문에 종교 재판에 회부된다.

저자는 여기서 '바티칸 고위층이 성찬식 교리를 위협하는 원자이론주의자로 갈릴레오를 고발해 '성찬식 논란'이 퍼지는 게 교회에 더 불리하다고 판단해 갈릴레오와 협상을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갈릴레오에게 지동설 부분만 처벌하고 목숨은 살려 주되 원자 이론에 대한 연구와 출판은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제안했고 갈릴레오가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의 숨은 배경이다. 이는 또 갈릴레오의 파란만장한 삶이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전설' 사이에서 수많은 버전으로 윤색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