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4집 '폴라로이드' 발표

김형중(36)의 4집 '폴라로이드(Polaroid)'에 참여한 작곡가들은 보기 드물게 화려하다.

유희열, 이적, 러브홀릭의 강현민, W&웨일의 배영준과 한재원, 페퍼톤스 등의 실력파 싱어송라이터와 황세준, 황성제, 황찬희 등 유명 작곡가들이 한 음반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김형중이 마음 편히 곡을 부탁한 친한 인맥들. 최근 만난 김형중은 "이런 황금 조합들이 내가 계속 음악에 미련을 갖게 한다"고 웃었다.

"모두 어디가면 타이틀곡만 작업할 작곡가들이죠. 덕분에 음악적으로 걱정은 안 됐어요.우스갯소리지만 음반을 내 정말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망하거나 지인들이 곡을 안 준다면 과감하게 음악을 포기하고 딴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히트의 기쁨과 공백기의 좌절을 연거푸 겪으며 기복이 컸던 탓이다.

1993년 유로 테크노 그룹 이오스(E.O.S)로 데뷔한 그는 '넌 남이 아냐' 등의 히트곡을 내며 시대를 앞서간 가수로 주목받았다.

1997년 IMF 한파로 실험적인 음반을 내기 힘든 상황이 되자 부모님 눈치를 보며 지루한 공백기를 보냈다.

이 시기 토이의 객원 가수로 '좋은 사람'을 히트시켰고 2003년 솔로로 나서 '그랬나봐', '그녀가 웃잖아'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2006년 3집은 활동도 못한 채 흥행에 실패했고, 다시 3년의 공백기 끝에 4집을 냈다.

새 음반을 내도록 용기를 준 데뷔 시절 친구 황세준이었다.

"제가 돈 안 되기로 유명한 가수예요.음반 판매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시장에서 저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도 없으니까요.그래서 음반기획사를 차린 세준 씨에게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라고 했죠. 그런데 세준 씨가 확고하게 저를 붙잡아줬어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음악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현실에 쫓겨 못한 것들이 숙제처럼 쌓이는 듯했다.

이 숙제를 외면하면 다른 곳에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음악을 통해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희망도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 같아 비겁해 보이겠지만 음반 시장이 불황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며 "욕심을 버리게 되니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4집은 전작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이다.

좋은 곡만 채우려 했고, 그랬기에 더 많은 곡을 채우지 못한 아쉬움도 남았다.

"작곡가들의 다양한 색깔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다양한 색깔의 음악에 제가 녹아들고 싶었죠. 오히려 작곡가들은 제게 맞추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저는 반대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죠."

페퍼톤스가 쓴 '옆자리'는 모던록과 일렉트로닉의 경계에 있고, 이적이 쓴 '낮잠'은 이적의 2집 '하늘을 달리다'와 닮아 신난다.

강현민이 만든 '봄이라서 좋아'는 경쾌한 드럼 비트의 밴드 사운드를 입었고, 유희열이 작곡한 '에어 메일(Air Mail)'은 토이 6집에서 김형중이 부른 '크리스마스 카드'의 노랫말과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황성제가 작곡한 타이틀곡 '오늘의 운세'는 히트 넘버가 연상되는 비트있는 발라드다.

"36살에 부르기에는 가사가 좀 쑥스러워요.하지만 녹음하고 나니 입에 착착 감겼어요.보통 가수들은 자기 목소리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제 목소리가 대중의 귀에 좋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곡이죠."

자작곡을 담지 않은 이유로는 솔로 음반에는 많은 사람이 좋아할 곡을 넣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쓰는 곡은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마니아적인 성향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라는 것.
인터뷰 자리가 파할 즈음, 그에게 "음반에 대한 평단의 호평과 흥행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흥행을 꼽았다.

"20대 초반에는 평단의 평가가 중요했어요.기회가 무궁무진 했으니까요.이제 제 연차가 되면 기회가 많지 않아요.중요한 건 오랜 시간 음악을 지속할 여건이 주어지는 것이니까요.앞으로 영화와 뮤지컬 음악도 해보고 싶어요."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