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개봉 영화 '인사동 스캔들' 배태진 역
엄정화 "독한여자, 멋지긴해도 부럽진 않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이라는 수식어는 영화 '인사동 스캔들'의 미술계의 큰 손 배태진 회장에게 딱 들어맞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명예를 좇는 그는 짙은 화장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의상을 완벽하게 갖추고, 필요할 때가 아니면 웃지도 않는다.

그에게 남자들의 뺨을 올려붙이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가수로서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파격적이고 당당한 모습의 엄정화는 배태진 역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러나 엄정화는 "내 안에는 그런 캐릭터가 없다"며 영화 출연을 망설였다고 말했다.

17일 만난 그는 의외로 말투가 차분하고 조용했다.

"사람이 여러 가지 모습을 갖고 있겠지만 배태진처럼 막 소리지르고 남자들을 때리는 그런 강함이나 차가움은 제겐 없어요.제가 생각해도 전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에요.여러 사람과 어울려도 주도하기보다는 끌려가는 사람이죠"

그는 강하고 독한 배태진의 캐릭터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거절하기 위해 감독을 만나러 갔다고 했다.

"나한테는 그런 모습이 없는데 그럼 너무 연기하는 게 아닌가, 은연중에 내 평소 손짓이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자신감도 없었고 신인 감독이시기 때문에 모험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러나 2시간여 동안 캐릭터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감독에게 믿음이 생기고 결국 설득당했다.
엄정화 "독한여자, 멋지긴해도 부럽진 않아"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배태진은 스무 살도 되기 전 서울에 올라와 인사동을 헤매다 숙식을 제공해 주는 일자리로 갤러리에 들어간다.

큰 야망을 품었던 배태진은 열심히 일하며 신뢰를 얻고, 자신의 명민함과 미모를 이용해 최고의 자리까지 왔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배태진의 이야기다.

"자기 삶의 목적이 너무 뚜렷해서 그것을 쫓아가는 모습은 저랑 닮은 것 같기도 해요. 배태진의 목적이 돈과 명예라면 저는 좋은 작품을 끝없이 하는 거고, 좋은 배우가 되는 거죠"

"물불 안가리는 모습이 멋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부럽진 않아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배태진이 사랑이나 따뜻함을 알게 되면 참 좋겠지만, 그걸 알았다면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했겠죠?"

데뷔 17년차로 10여편이 넘는 영화를 찍고, 10장의 앨범을 낸 그는 "와락 두려워질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좋은 배우가 된다는 건 끝이 없는 것 같아요.연기를 하면서 벽에 부딪히고,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이걸 할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워질 때가 있어요.여태까지 해 온 게 신기할 정도로요.오히려 처음엔 겁 없이 했었죠"

의외의 약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인 그에게 최근 방송에서 눈물을 보인 얘기를 꺼내자 쑥스러워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결혼은 제 목적이 아니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결혼이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주변에서 하도 물어보니까, 또 아기 낳을 생각을 하면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내년 안에는 하고 싶은데 못할 것 같기도 하고요.아, 최근에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란 영화를 봤는데 많이 울었어요.그거 보니까 늙으면 혼자 있으면 안되겠다, 남편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oyy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