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편성 교향악 피하고 비행기 좌석등급 낮추고…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클래식 음악계도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인원과 비용이 많이 드는 대편성 공연을 지양하고, 최대한 몸집을 줄여 연주하는 경향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21일까지 계속되는 예술의전당의 간판 프로그램 '교향악축제'에서는 대규모 연주자들이 필요한 대편성 교향곡이 예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줄었다.

모두 17개 교향악단이 참가한 올해 연주회에서 대편성 교향악을 선곡한 곳은 지난 8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선보인 울산시향, 15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르슈카'를 들려준 충남교향악단, 18일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을 연주한 제주교향악단 정도.
나머지 교향악단들은 대부분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 시벨리우스, 차이코프스키 등 소규모, 중간규모의 편성으로 소화할 수 있는 교향곡들을 골랐다.

이런 현상은 말러의 '교향곡 1번-거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좀처럼 국내 무대에서 만나기 어려운 곡들을 비롯해 쇼스타코비치, 브루크너, 베를리오즈 등 대편성 작곡가들의 교향곡이 대세를 이뤘던 지난해와는 뚜렷이 대비되는 것이다.

앞서 2007년에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교향곡 6번', '교향곡 7번',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등 대편성 교향곡이 다수를 차지했다.

대편성 교향곡이 이처럼 급감한 이유는 경제난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난의 여파로 국내 오케스트라 대부분의 예산이 삭감된 마당에 비용이 따로 들어가는 객원 단원들을 써가면서 대편성 교향악을 무대에 올릴 여유가 없는 것.
한 음악계 관계자는 "이런 시절에 서울시립교향악단처럼 고정 단원 수가 100명에 육박하지 않는 한 대편성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편성 교향악은 대개 실험적이거나,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품들이라 한번 무대에 올리고 나면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데 아쉽다"면서 "관객들도 다양한 음악을 접할 기회를 잃는다는 점에서 손해"라고 덧붙였다.

고환율 역시 클래식 음악계의 다이어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해외 연주자들을 불러 연주회를 여는 기획사들은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이다.

내달 23일 LG아트센터에서 바로크 바이올린과 포르테 피아노가 결합하는 '레이첼 포저&게리 쿠퍼 듀오 리사이틀'을 기획한 클래식공연 기획사 빈체로는 얼마 전 초청 연주자의 비행기 티켓을 비즈니스석에서 이코노미석으로 하향 조정하는데 합의했다.

연주자를 초청할 때는 최하 비즈니스석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는 게 관례지만 환율 급등으로 공연이 아예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예산 절감을 위해 비행기 티켓 값이라도 줄여야 했던 것.
'다이어트'로는 도저히 안돼 아예 공연이 취소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4월23-25일 열릴 예정이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무산된 데 이어 10월 내한할 계획이었던 신시내티 심포니 역시 재정난을 이유로 공연을 취소했다.

이밖에 내달 내한하려 했던 일본 비주얼 록 가수 각트(Gackt) 역시 기업의 협찬 취소를 이유로 최근 한국 공연을 취소하는 등 대중음악계에서도 내한 공연 취소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