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옆 풀숲에 몸을 숨기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렸다. DC-3 쌍발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면 나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출발 준비를 했다. 알루미늄 동체의 번쩍이는 리벳 수를 셀 수 있을 만큼 비행기는 가까웠다. 드디어 엔진 두 개가 굉음을 내기 시작하자 나도 일어서서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근육은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비행기는 캘리포니아의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심장이 고동 쳤다. 나는 머리를 잔뜩 숙이고 활주로를 따라 온 몸의 체중을 페달에 실어 힘껏 달렸다. '

인간 게놈 지도를 최초로 완성한 크레이거 벤터(63)의 성장기 모습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가득 찬 '창의적 악동'이었다. 그는 늘 강과 산으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모험과 도전을 즐겼다. 그의 부모님이 날마다 한 말도 "나가 놀아라"였다.

이 같은 성장 환경과 자유로운 기질은 그가 세계적인 '유전자 왕'으로 성공한 밑거름이 됐다. 활주로를 벗어난 '커다란 새'를 따라잡겠다고 미친 듯이 자전거 페달을 밟던 소년 시절부터 그의 삶은 놀이와 지적 탐험의 연속이었다.

그의 자서전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에 나오는 고백처럼 그는 학업에 흥미가 없어 그다지 주목받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모든 경험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과학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 제도의 '딱딱한 상자' 속에 갇히지 않고 호기심을 마음껏 풀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유 방임의 즐거운 놀이터에서 한층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계기는 해군 의무병으로 참전한 베트남 전쟁이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그는 인간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고 이 때 정립된 가치관 때문에 대학 시절 반전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과 의학의 매력에 푹 빠져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생리 · 약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재능 있는 과학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국립보건원에서 연구를 시작한 뒤 1991년 발현 서열 꼬리표(EST)를 사용하는 혁신적인 기술로 신속한 유전자 분석에 성공하고 1995년에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최초로 생물 게놈을 해독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전체 인간 게놈 해독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벤처기업 셀레라 지노믹스를 창립했다.

그는 정부의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보다 더 빨리,더 적은 비용으로 목표를 이루겠다고 공언했고 마침내 2000년 6월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믿어지지 않는 기적의 지도'를 전 세계에 펼쳐 보였다.

그는 이처럼 새로운 역사의 탄생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경쟁,정부 정책과 금전적인 문제,인간 게놈 지도 완성 이후 미생물 게놈 연구를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까지 자신의 일대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 놓는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연구자이자 기업가로서의 비전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고 현대 유전체학의 흐름과 전망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 게놈의 해독은 혁명의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기와 바다의 미생물 게놈 연구로 석유 고갈과 환경 오염 등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별로 주목받지 못한 소년'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공한 동력이 끈기와 도전정신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또 어떤 '게놈의 기적'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