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이철수에게 배심원 전원 합의로 무죄(Not Guilty)를 평결함."

1982년 9월3일 저녁 8시15분 미국 샌프란시스코 형사지방법원 제27호 법정.12명의 배심원단이 합의한 평결문을 법원 서기가 낭독하자 방탄 유리벽 너머 방청석에 앉아 있던 유재건 변호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여러분,이겼습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

곧이어 재판장이 무죄를 선언하고 퇴장하자 재미교포 등 120여명의 방청객은 눈물과 환호로 서로를 얼싸안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9년3개월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포 청년 한 사람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발벗고 나선 지 5년여.정성 어린 기도와 눈물 어린 변호 성금은 물론 공판 때마다 방청석을 메우며 힘을 보탠 그들은 국적과 인종,남녀와 노소를 떠나 하나였다. 정의와 진실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함께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철수 사건'은 1973년 6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중국 갱단 고문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당시 열아홉 살이던 재미동포 이씨가 억울하게 체포돼 1급 살인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고 투옥된 후 4년여 만에 옥중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또다시 몰린 영화 같은 이야기다.

11세에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서 노동판을 전전하던 그는 서툰 영어 실력 탓에 스스로 변론조차 못한 채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된 검찰의 희생양이 됐다.

옥중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이씨는 캘리포니아주의 부활된 사형법에 따라 10년 만에 처음으로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몰렸고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당시 연방정부의 지역사회 변호사로 새크라멘토의 법률구조처에서 일하고 있던 저자는 한인은 물론 아시아계와 백인들까지 참여한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결성해 차이나타운 살인사건과 옥중 살인사건에 대해 그의 완전한 석방을 이끌어냈다.

'재미동포 이철수 구명활동 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당시의 재판기록과 신문기사,구명활동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등을 엮은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단순한 보고서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변호사,형사,검사,기자,형무소의 간수와 수감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법정 드라마나 추리소설같다. 짜맞추기 수사를 위해 검사가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거나 배제한 증인들을 찾아내 원고 측과 벌이는 공방도 치열하다.

특히 1983년 8월 이씨가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기까지 구명운동에 동참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휴머니즘 그 자체다.

미국 언론계의 '형사 콜롬보'라는 별명을 얻은 한인사회 최고참 언론인 이경원 기자,변론에 앞장선 토니 세라 · 와인글래스 · 스튜어트 핸론 · 레오나드 타우먼 변호사,사설탐정 팅크 톰슨,정의를 위해 희생적으로 증언대에 선 살인사건의 목격자 스티브 모리스,이씨의 변론을 위해 법과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구명운동에 앞장선 일본인 2세 랑코 야마다 변호사.그리고 변호를 위해 후원금을 내고 가두행진과 촛불시위,편지쓰기,공판 방청 등으로 동참한 수많은 사람들….

저자는 "정의와 자유를 지키려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이씨의 구명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책 제목을 '함께 부르는 노래'로 정한 것이나 구명운동의 총지휘자로 이씨의 보석을 위해 집까지 담보로 내놓았던 자신의 역할을 애써 소극적으로 서술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