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유럽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의 우리처럼 혼돈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중세에 일어났던 일련의 거대한 재해들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14세기와 15세기에 걸쳐서 흑사병은 유럽 인구 3분의 1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으며,오스만 투르크는 1453년 동로마제국 비잔틴을 멸망시켰다. 또한 프랑스 왕권이 강해지고 로마교황의 권위가 약화되면서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해야 했던 '아비뇽 유수'와 세 명의 교황들이 각각 자신이 진정한 교황이라고 주장하면서 일어난 교회의 대분열 등 교황권과 관련된 사건들로 인해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의 과정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창조적인 시간이었다. 그사이 서양인들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되는 복잡한 과정들이 진행됐다. 각종 과학적인 발명과 혁신 등이 각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는 당시만 해도 그다지 중대한 사건들로 보이지 않았지만, 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새로운 기술 혁신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이전 어느 때보다 자연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정신은 아주 서서히 중세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으로 '종교적'일 수 없었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과 변화는 성서를 읽는 태도 자체를 바꾸기에 이르렀다.

서구는 인류 역사상 전례없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려는 찰나에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문턱에 한 선구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라스무스였다.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1536)는 중세의 세계관과 신앙관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특히 기독교 교의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고 시도한 중세 스콜라 철학에 더욱 비판적이었다. 그는 스콜라 철학이 너무 건조하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한 에라스무스의 정신은 '아드 폰테스(ad fontes)'라는 표현에 집약돼 있다. '아드 폰테스'는 원래 구약성서 시편 141편에 등장하는 "목마른 사슴이 샘물들을 찾아 헤매듯이,내 영혼이 당신을 향해 있습니다"라는 문장에서 나왔다. 이 구절 중 '샘물들을 향해'의 라틴어 표현이 바로 아드 폰테스다. 에라스무스는 새로운 역사는 '일이 진행된 중간에서(in medias res)'가 아니라 '처음부터(ab initio)'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라스무스는 중세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선 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르네상스 시대는 종종 고전시대의 종교 관행들을 재발견한 시대로 이해되고 있지만,사실은 중세 세계관을 형성한 성서에 대한 재해석에서 시작됐다. 중세 시대에는 극소수의 서구인들만이 고전 그리스어에 익숙했다. 그러나 15세기 오스만 투르크가 동방 그리스도교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자,비잔틴 제국의 포로들은 고전 그리스어 문헌들을 가지고 유럽으로 피난했다. 에라스무스는 중세의 라틴어로 번역된 성서만 읽었는데, 처음으로 신약성서 그리스어 사본을 보게 되었다. 중세 신학자들이 성서를 언급할 땐 4~5세기 신학자 제롬이 번역하여 중세 교회의 공식 성서가 된 라틴어 번역 성경 '텍스투스 불가투스(Textus Vulgatus)'를 의미했다.

에라스무스는 '원천으로' 돌아가 구약성서는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신약성서는 그리스어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기 르네상스의 학문적인 이상은 '세 언어(히브리어,그리스어,라틴어)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편집해 작성한 그리스어 성서를 다시 이전 라틴어 번역보다 더 정교하고 우아한 키케로식 라틴어(Ciceronian Latin)로 번역했다. 에라스무스와 같은 인문학자들은 무엇보다 글의 솜씨와 수사기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또 시대를 지나오면서 문헌에 축적된 오류들을 찾고 수정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성서를 과거의 오류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1515년에 펴낸 책 '엔키리디온'에서 성서 전문지식을 갖춘 일반인이 교회 갱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쇄술의 발전은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서를 출판할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스어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서를 원래의 언어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학자들은 기존의 어떤 시대보다도 더 빨리 번역문을 확인하고 개선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에라스무스는 사망하기 전 다른 학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수차례에 걸친 개정본을 출간했다.

에라스무스가 찾아낸 번역 오류의 대표적인 예는 신약성서 마태복음 4:17의 내용이다. 중세 라틴어 성서는 이 구절의 일부를 '고해성사하라.왜냐하면 천국에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로 번역했다. 그러나 에라스무스가 발견한 그리스 원본의 해석은 이 의미와는 사뭇 달랐다. '고해성사하라'가 아니라 '회개하라'라는 의미였다. 즉 그리스어 번역(회개)은 개인의 인격적 변화를 의미하며, 교회의 제도나 성례(고해성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과의 일대일 만남을 통해,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면 된다는 뜻이었다.

에라스무스의 '아드 폰테스'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끈 르네상스의 정신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엄습하는 과거의 관행과 당연시되는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 및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가 먼 훗날 제2의 르네상스의 시작을 의미있는 세기가 될 수 있으려면 우리도 '아드 폰테스', 즉 '원천으로'의 정신을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