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0년 전,찰리 채플린이 자신의 영화 '시티 라이트' 시사회 참석차 영국에 왔다가 런던 빈민가에서 간디를 만났습니다.

그때 간디는 영국의 소금 독점법에 저항해 이른바 '소금 행진'을 벌여 투옥됐다가 풀려난 직후였지요. 채플린은 간디에게 '독립 노력'은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만 '기계 혐오증'에는 혼란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빙그레 웃으며 기계가 인도 사람들을 영국에 의존하게 만드는 물건이기 때문에 인도인이 자신의 옷감을 직접 짜 입으면서 '불필요한 물건들'과 결별해야 독립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채플린은 이날 간디가 명민하고 현실적인 사상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5년 후 채플린이 공업 생산과정을 풍자한 영화 '모던 타임스'를 만들었는데,사람들은 이를 간디의 영향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분석합니다.

이처럼 주요 인물들의 만남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기도 합니다. 신간 《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에드윈 무어 지음,차미례 옮김,미래인 펴냄)에 세계사를 수놓은 운명적 만남 100가지가 소개돼 있습니다.

젊은 작곡가 슈베르트가 죽음 직전의 베토벤을 만난 뒤 결정적인 변화를 겪었다는 얘기부터 천하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파리로 피신했을 때 왕의 정부인 퐁파두르 부인에게 일부러 접근해 환심을 산 일화까지 '중요하고도 엉뚱한' 만남의 순간들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학생 대표로 환영사를 낭독한 인물이 훗날 그들을 단두대로 밀어넣은 로베스피에르였고,링컨 대통령이 연극을 보러 극장에 갔다가 관심을 보였던 주연 배우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된 얘기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의외의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군요. 편년체 정사 위주로 접했던 서양사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역사를 내다보는 작은 창문'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