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올해 첫 경매가 열린 지난달 26일 오후 5시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하우스.경제위기로 미술시장이 위축된 가운데서도 첫 경매에 쏠린 관심은 대단했다.

손에 도록을 쥔 컬렉터들이 경매 시작 한참 전부터 모여들더니 200석가량의 경매장이 꽉 찼다. 자리를 잡지 못한 수십명은 바닥에 앉아야 할 정도였다.

서양화가 이동재의 작품 '장금'으로 시작한 이날 경매에서는 출품작 226점 중 189점이 낙찰됐다. 낙찰률 83.6%.컬렉션을 처음 시작하는 애호가들을 고려해 100만~300만원대 작품을 많이 내놓은 게 주효했다.

이날 경매를 진행한 옥셔니어(경매사)는 김기정 헤드 스페셜리스트(35).경매의 기획부터 작품 발굴 및 수집,감정 및 추정가 산정,프리뷰(경매 전 전시) 준비 및 도록 작성,컬렉터 상담,경매 진행,낙찰대금 수금 및 작품값 지급까지 경매의 전 과정을 총괄하는 사령탑이다.

시장 상황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김씨는 경매가 끝나자 비로소 상기된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경매는 어땠습니까.

"미술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낙찰률이 꽤 높았습니다. 경매 금액보다 낙찰률 위주로 기획했던 게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미술품 수집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신규 회원으로 가입한 분들이 20여명이나 됐는데 이 정도면 미술시장이 활황일 때 수준이에요. 미술시장의 잠재 수요를 확인한 셈이죠."??

▼경매회사의 수익은 얼마나 되나요.

"경매회사는 메이저 경매 네 번으로 연간 매출의 80%를 달성해야 하는데 시장 상황이 워낙 안 좋아서 저렴한 것으로 시작했어요. 큰 경매의 경우 일주일 프리뷰를 한 뒤 경매를 하면 매출이 500억원 정도에 달하는데 이번에는 전체 물량이 15억원(추정가)에 불과했거든요. 여기에 낙찰률을 곱하면 매출은 12억원가량,그중 22%가 경매회사 수익입니다. "

▼다른 산업보다 수익률이 높네요.

"그렇죠.하지만 비용이 은근히 많이 들어요. 전시공간 장식 비용이나 유지비가 많이 들죠."

▼경매행사는 어떻게 알리나요.

"제가 서울옥션 1999년 창립 멤버인데요,당시엔 홍보에 돈을 많이 썼어요. 6~7년 전만 해도 신문 광고도 많이 했죠.지금은 고정 고객이 많아서 광고하지 않아도 경매에 참여하러 오십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우 연간 경매 스케줄을 공지하는데 우리는 경매 위탁을 받으면 2~3개월 전부터 경매 일정을 홈페이지에 공지해요. "

▼앞으로 주요 경매 일정은 어떤가요?

"3월 말에 메이저 경매가 잡혀 있고 4월엔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에서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5월엔 홍콩 경매도 있어요.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은 매주 작은 데 비해 홍콩은 특수합니다. 한국에서는 비(非)컬렉터들의 시장 접근이 어렵지만 홍콩은 그냥 소비 목적으로 오는 중화권 고객들이 많아서 접근이 쉬워요. 대만,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화교들이 많이 오거든요. "

▼경매는 어떻게 준비하나요.

"작가들한테서 작품을 수집해 일반 고객에게 판매하는 화랑과 달리 경매회사는 컬렉터들이 수집해 놓은 작품을 위탁 판매하는 2차 판매자예요. 따라서 개인 컬렉터와 딜러들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경매를 하려면 기획,작품 수집,감정 및 추정가 산정,위탁자와 계약 체결,프리뷰 준비 및 도록 작성,홍보,경매 진행,경매 후 수금 및 대금 지불 등의 전 과정을 옥셔니어가 담당해야 해요. "

▼감정 및 추정가 산정은 어떻게 합니까. 위작 논란도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작품에 대한 학습을 많이 하고 진품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경매를 합니다. 또 자체 감정,협회(한국미술협회 · 고미술협회) 감정,유족 감정의 절차를 통해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요. 물론 그 과정에서 감정비용이 많이 들지만 감정위원 중 한 명이라도 반대 의견이 있어서 조정이 안 되면 경매 위탁 계약을 할 수 없어요. 외부 전문가 감정은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돼 있거든요. "

▼옥셔니어의 진행 솜씨에 따라 낙찰률의 편차가 큰가요.

"사실 경매는 보여주기 위한 '쇼(show)'의 성격이 강해요. 프리뷰에서 60% 정도는 낙찰자가 정해지거든요. 하지만 현장에서 옥셔니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가량은 진폭이 있을 수 있죠.예상 외의 인물이 경매를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진행을 매끄럽게 해야죠.일반적으로 경매는 현장에서의 공개 경매,전화 응찰,서면 입찰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져요. 전화 응찰은 고객이 얼굴을 드러내기 힘든 경우 VIP룸에서 전화로 응찰하는 것인데 소더비 같은 곳에서도 2층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숨겨진 방들이 많습니다. 또 서면 응찰은 부재자를 위한 것인데 어떤 가격대에 사겠다고 미리 서면으로 약속하면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죠."

대학에서 주거환경학을 전공한 김씨는 졸업 후 영국에서 유학했다. 경매그룹 소더비와 연계한 맨체스터대학 '소더비즈 인스티튜트'에서 19~20세기 장식미술을 전공했다. 특히 소더비에서 1년 반 동안 인턴으로 일한 것이 옥셔니어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99년 귀국해 서울옥션 창립 멤버로 일을 시작했을 때 스태프 중에서 경매에 대해 제대로 아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더비즈 인스티튜트에서는 주로 뭘 배우나요.

"거기는 산 · 학 협동 과정이라 철저히 실물 위주로 배워요. 한국에서는 미술사,이론,역사 등 미학적 측면을 강조하지만 소더비즈는 매일 국립미술관,대영박물관에 가서 실물 중심으로 공부해요. 미술사는 기본적으로 공부가 돼 있다고 보고 실물이 진짜냐 아니냐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작품 하나를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던져주고 연대와 제작자,용도,가격 등을 알아내도록 해요. 그러면 도서관이나 박물관,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등에서 오리지널 자료를 열람하며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듯 퍼즐을 맞춰 나갑니다. "

▼공부하기가 만만찮았겠는데요.

"학생들 대부분이 미술을 전공한 상류층 출신 서양인이었죠.영어는 기본에 불어,이탈리아어 등에 능통한 데다 우리가 유교문화에 익숙하듯 기독교문화의 기본지식을 갖춘 학생들이어서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한국에서는 대학을 느슨하게 다녔는데 거기선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시작해 고교 입시생처럼 공부했죠.학비가 학기당 1만파운드(약 2000만원)나 하는데 아깝잖아요. "

▼옥셔니어로서 어떤 때 보람을 느낍니까.

"사실 경매를 한번 치르고 나면 스태프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요. 내내 긴장하고 걱정하는 탓이죠.특히 호가가 수십 번 왔다갔다면서 경합이 심하면 더 그래요. 추정가가 큰 작품의 경우 전화 응찰자에게 가격을 알려주는데 가격을 조작하는 것 아닌가 하고 째려보는 분도 있어요. 저희는 경매를 진행할 뿐 조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적당한 값에 팔아야 마음이 편해요. "

▼경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일의 범위가 매우 넓군요.

"고려청자부터 앤디 워홀까지 다 다루다 보니 공부해야 할 게 많고 일의 범위도 넓죠.경매 기획,진행뿐만 아니라 고객관리,VIP 마케팅까지 해야 돼요. 아주 중요한 VVIP 고객의 경우 경매 외의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가령 친한 고객님이 골프장을 설계할 때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조언을 해드리거나 파티용 그릇을 고를 때나 도자기 작품을 살 때도 도와드리죠.컬렉션은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해요. 그러니 좋은 컬렉션을 만들어 드리는 보람이 커요. "

▼미술품을 너무 돈으로만 본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별로 놀라운 얘기는 아닙니다. 미술사를 보면 자본이 있는 곳에서 미술이 발달했습니다. 미술품은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돈을 내면 독점적인 소유가 가능한 게 특징이죠.그러니 재산 가치가 안따를 수 없지요. 다만 우리나라는 자본 형성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시비가 되지만 순수한 컬렉터들도 많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

글=서화동/사진=김영우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