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살 노장' 이스트우드의 괴력
"내 땅에서 나가….나로 말하면 한국에서 네놈들 시체를 쌓아서 방패로 사용한 몸이야."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던 월트 코왈스키 노인(클린트 이스트우드)이 동네에서 소란을 피우던 아시아계 건달들에게 총구를 겨누며 던진 말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숱한 인명을 살상한 죄책감으로 주변 사람들과 담을 쌓고 산다.

그러나 옆집으로 이사온 베트남계 이민자들과 교분을 나누며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어간다. 마침내 그는 건달들에게 시달리는 그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놀라운 선택을 하게 된다.

이스트우드가 주연과 감독을 겸한 액션드라마 '그랜토리노'는 전작 '미스틱 리버''밀리언달러 베이비' 등에서 천착했던 구원의 문제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두 전작에 비해 결말은 더욱 극적이며,유머는 한층 강화됐다. 이 때문에 저예산영화임에도 입소문을 타고 흥행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스트우드가 맡은 코왈스키 역은 완고한 우리네 할아버지를 연상시킨다. 버릇없는 아이들을 못마땅해하고,인종차별 의식도 뿌리 깊다. 그렇지만 자신을 공경하는 옆집 처녀 수를 통해 아시아계 사회에 동화된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가족애와 성실한 삶의 자세에 본심을 연다. 그의 진심은 차고 속에 숨겨둔 '그랜토리노'(1972년 포드가 제작한 명품 세단)로 상징된다. 그가 그 차를 꺼내 보였을 때 등장인물과 관객 모두 감동하게 된다. 또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를 교화시키려던 '풋내기' 신부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준다.

영화의 매력은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유쾌하게 표현한다는 것.아시아인들에 대한 노인의 인종차별적인 발언들도 유머러스하게 표현된다. "우리집 개는 잡아먹지 마." "개는 안 먹고 고양이만 먹어요. " 노인이 몽족 청년 '타오'를 '토드'라 계속 부르고,타오는 노인의 이름 '월트'를 '월러'라 부르는 장면에서는 인종 간의 뿌리깊은 편견을 꼬집기도 한다.

'그랜토리노'는 지난해 말 미국 6개 스크린에서 개봉된 이래 흥행몰이에 나서면서 5주째 2800개 스크린으로 확대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할리우드 영화로는 저예산인 3300만달러를 투입했지만 2일 현재 1억4000만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12세 이상,19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