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방에서만 보이는 오로라가 출현했던 곳.외출했다 돌아와보니 곰이 집안에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열고 있더라는 소문이 단지 소문으로만 들리지 않는 곳.

'설국' 일본에는 아직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땅, 홋카이도가 있다. 매년 인색해지는 겨울의 눈 인심이 아쉽다면 홋카이도가 대안이다.

2월 말에도 여전히 온 세상을 뒤덮은 은빛 항연과 자작나무들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행의 목적을 채워준다. 홋카이도는 일본인들도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 중 하나다.

일본에서 하는 극지 체험

그 중에서도 도동 지방은 홋카이도 여행의 백미이자 종착점이라 할 수 있다. 스키장이나 눈축제,노천온천은 기본.수백마리의 곰들이 살 정도로 원시자연이 보존돼 있는 데다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유빙(흘러다니는 얼음덩이)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아바시리시에서 쇄빙선 '오로라호'를 타고 20분가량 바다로 나가면 수평선 너머로 하얀 띠처럼 다가오는 유빙을 만날 수 있다.

오로라호는 관광을 목적으로 한 세계 최초의 쇄빙선으로 1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운항한다. 유빙 지역에 들어서면 쇄빙선은 그야말로 하얀 바다를 호쾌하게 깨뜨리면서 나아간다.

유빙과 배가 부딪칠 때 느껴지는 박력있는 진동이 온 몸에 퍼진다. 마치 남극 바다에라도 온 듯한 느낌을 이웃나라 일본에서 맛보는 것이다.

쇄빙선을 따르는 괭이갈매기 무리들은 관광객들을 스치듯 날고,운이 좋으면 유빙과 함께 떠내려온 바다표범을 볼 수도 있다. 더 욕심이 난다면 드라이수트를 입고 직접 유빙 위를 걷는 체험도 가능하다.

이곳의 유빙은 시베리아 아무르강에서부터 흘러내려 온 것이며,홋카이도 도동 지방은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유빙 체험지로 알려져 있다.

근처에는 유빙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오호츠크 유빙관'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영하 18도의 환경에서 유빙을 보존 전시하고 있으며,유빙의 생성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마쓰리·온천·별미… 가는 곳마다 환상적인 쇼쇼쇼~

얼음바다 외에도 홋카이도에서 설국을 즐길 수 있는 마쓰리(축제)와 쇼는 지천이다. 시레토코의 오로라 판타지아 쇼는 진짜 오로라보다 더 화려해 보인다. 이 지방에는 1950년대 한 차례 오로라가 실제로 나타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오로라 축제는 레이저광선과 음향을 동원해 말 그대로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얼어붙은 아사히카와 인근 쇼운쿄의 빙폭 축제도 장관이다. 거대한 얼음폭포 사이로 물줄기가 흐르며 군데 군데 지어진 에스키모 이글루 모양의 얼음집과 얼음동굴 사이를 걷노라면 어릴 적 동화에서 본 얼음나라가 떠오른다. 밤이 되면 조명과 불꽃을 이용한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맑은 호수

삿포로 눈축제 같은 눈조각품들을 보고 싶다면 아칸호수 축제에서 눈으로 만든 거대한 부엉이와 아기자기한 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타는 바나나보트도 특별한 재미를 줄 것이다.

아칸 국립공원 내에 있는 칼데라호 '마슈호'는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맑다는 호수 물과 산 정상의 시리도록 맑은 공기가 어우러져 방문객의 몸과 마음까지 순수하게 만든다.

마슈호는 연중 안개에 휩싸여 있는 신비한 모습인데,맑은 날 선명하게 보게 되면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바시리에서는 유빙과 함께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감옥 박물관이다. 1891년 지어져 1984년까지 사용됐던 아바시리 감옥은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명을 떨친 공포의 감옥이다.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도로 건설 작업 등에 내몰리며 많은 수의 죄수가 동사하거나 사고사했다.

오호츠크 해안과 중앙권을 연결하는 163㎞가 1200여명의 죄수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홋카이도 개척 과정에서 희생된 죄수들을 기리기 위한 박물관인 셈이다.

일반 사동이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공사 현장 숙소와 징벌방,목욕실 등에 실제 크기의 밀랍인형 죄수들이 전시돼 사실감을 더한다.

겨울 일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온천의 경우 홋카이도 도동 지방에서는 토카치가와 온천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고대식물의 퇴적지층을 뚫고 올라온 식물성온천이어서 피부 미용에 특히 좋다.

노천온천에 몸을 담근 채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가문비나무에 눈에 내리는 밤이면 '제대로 찾아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스키장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국내 스키장처럼 인공 눈을 쓸 필요가 없고 리프트를 타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사호로 스키장이 대표적이다.

토카치 지역에서는 광활한 목장에서 임신한 말들이 운동 삼아 달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홋카이도 지역은 일본의 대표적인 낙농지역이며,'밤바'라고 불리는 이곳의 말들은 보통 말들보다 1.5배가량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

속 꽉 찬 대게에 사슴버거까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인 만큼 먹거리 재미도 쏠쏠한 곳이 홋카이도 도동지방이다. 무엇보다 오호츠크해의 바다에서 잡아올리는 대게가 간판스타다.

얼음이 떠다니는 차가운 바다에서 나기 때문에 이 지역의 게는 속이 꽉 차고 육질이 탄탄하다. 그 밖에 각종 해산물과 생선 회도 신선하고 맛이 살아 있다. 오호츠크해와 사할린 해역 등에서 서식하는 홍살치(키치지) 회는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홋카이도에서 맛보는 삿포로 맥주는 더욱 청량하고,특히 도동 지방에서는 유빙을 이용한 맥주와 해당화 맥주 등 색다른 맛을 접할 수 있다. 홋카이도 맥주가 유명한 것은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홉과 맑은 물 때문이다.

홋카이도 도동 지방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사면을 거니는 사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가에 피해를 주는 늑대를 없애다 보니 사슴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문제는 사슴 수가 늘면서 산림 훼손 정도가 심해지는 등 생태계 파괴가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몇 해 전 탄생한 것이 '사슴버거'다. 돼지고기 대신 사슴고기를 사용한 사슴버거의 맛은 일반 햄버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다. 물론 사슴버거를 먹고 난 후 도로가의 사슴들을 보면 어색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어스름이 질 무렵이라면 오비히로 지역의 포장마차 거리 '키타노 야타이'가 제격이다. 2001년 지역 상인조합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이곳에는 19개의 개성있는 요리 선술집들이 모여 있다.

포인트는 19개 점포에 같은 메뉴가 하나도 없는 다양성이다. 일본 전통 음식들은 물론 피자와 중국 요리에 브라질 음식까지 맛볼 수 있다. 한국 음식과 소주가 그립다면 '맛있어요'란 상호의 한국 선술집을 찾아가면 된다.

아바시리(홋카이도)=박철응 기자 hero@hankyung.com

◆ 여행Tip
홋카이도 도동 지방을 가려면 아시아나항공이 주2회 운항하는 아사히카와 직항편을 이용해 아바시리로 향하면 된다. 아사히카와까지 비행시간은 3시간 안팎.아사히카와에서 아바시리까지는 차로 3시간30분 걸린다. 추위를 감안해 두툼한 옷을 준비하는게 좋다. 모자 달린 점퍼나 코트가 편리하며 장갑은 필수다.

3월 평균 기온은 0도 안팎이지만 때로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ICC(02-737-1122)가 홋카이도 도동지방 여행을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