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46)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교육한다. 특유의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로 최소한의 것만 지적하기 때문에 무용수들은 그의 작은 충고 하나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가 유니버설발레단에 몸 담은 지 올해로 25년이 됐다. 창단과 함께 시작했으니 유니버설발레단의 나이도 그만큼 먹었다. 그래서 올해에는 할 일이 더 많다.

26일부터 3월1일까지는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3막 발레 '돈키호테'를 올린다. 이후 140명이 출연하는 블록버스터 발레 '라 바야데르'(4월17~26일,예술의전당),창작 발레 '춘향'(6월19~20일,고양 아람누리극장),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안무작 '오네긴'(9월11~20일,LG아트센터),성탄 발레 '호두까기 인형'(12월22~31일,유니버설아트센터) 등 대작들을 줄줄이 준비 중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돈키호테'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벌써 유료관객률이 70%를 넘었다. 그는 "돈키호테는 한마디로 맛있는 작품"이라며 "무용수도 관객도 이 작품이 끝난 뒤에는 즐거운 만찬을 한 기분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쯤엔 국립발레단과도 함께 공연할 생각이다. "아직 언니(최태지 국립발레단장)와는 의논 중이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요. 선의의 경쟁 구도로 그려져 온 국립발레단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면 다시 '발레 붐'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어요?"

2001년 발가락 부상으로 은퇴했던 그는 "이젠 무용수들이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공연 전에 느끼는 극도의 긴장감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연습실과 집을 오가던 그의 인생에서 춤출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뒤 오는 공허함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은퇴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에요. 집에 뭘 두고 나와서 다시 내 방에 들어갔는데,한낮인 데도 내가 연습실이 아닌 집안에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때의 생경함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

그랬던 그가 인생의 재미를 찾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발레단의 경영을 전적으로 책임지면서부터다. 무대에 설 때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경영을 시작한 뒤에는 만나야 할 사람도 늘어났고 그들과 나눌 얘기도 많아졌다. 갑자기 넓어진 인간관계가 어색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 나름의 묘미를 찾았다.

"한 사람을 알면 내가 아는 세상의 크기도 그만큼 넓어지더라고요. 마치 원의 반지름이 커지는 것처럼요. "

그의 두 아이도 삶을 채워주는 큰 '보물'이다. 문 단장은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의 사망한 아들과 영혼 결혼식을 올린 뒤 시동생으로부터 아들 신철을 입양한 데 이어 시숙의 딸 신월이를 키우고 있다.

두 아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의 얼굴에도 여느 엄마처럼 자녀에 대한 걱정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과의 말다툼 때문에 속상하다고 털어놓는가 하면 일곱살배기 딸아이의 재롱이 사는 낙이라고 기뻐한다.

"얼마 전에는 일에 지쳐 소파에 누워 있으니까 신월이가 담요와 베개를 가져다 주고서는 저를 재워준다며 손으로 제 어깨를 토닥거리더라고요. 이런 게 사는 기쁨이죠."

글=박신영 기자/사진=임대철 인턴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