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빈민가 소년의 인간 승리를 감동적으로 그린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올해 아카데미 8관왕에 올랐다.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영예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편집 각색 촬영 음악 주제가 음악편집상을 휩쓸었다. 이 작품은 인도 뭄바이 빈민가 출신의 18세 청년 소년 '자말'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 결선에 오르는 과정을 눈물겹게 그린 휴먼 드라마다. '트레인스포팅'과 '비치' 등을 연출한 대니 보일 감독의 감각적인 역출력과 작가 사이먼 뷰포이의 탄탄한 스토리,아름다운 주제곡이 하모니를 이뤘다는 평가다.

남우주연상은 동성애자의 인권 옹호를 위해 애쓴 운동가이자 정치인인 하비 밀크의 생애를 그린 '밀크'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숀 펜(48)에게 돌아갔다. 숀 펜으로서는 5번째 오스카 후보였고 2004년 '미스틱 리버' 이후 두 번째 남우주연상 수상이다.

여우주연상은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로 아카데미상에 6번째 도전한 영국 출신 케이트 윈슬렛(33)이 받았다. 윈슬렛은 2차대전을 배경으로 10대 소년과 사랑을 나누는 한나 역을 맡아 30대의 성숙하고 강인한 여인부터 60대의 힘없고 초라한 죄수까지 복합적인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올해 시상식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남우조연상을 받은 '다크나이트'의 고(故) 히스 레저였다. "내가 죽더라도 내 영화는 계속 살아 남아 사람들이 그 자체로 나를 평가하게 될 것"이란 말을 남기고 지난해 초 약물과용으로 숨진 히스 레저의 수상은 1976년 '네트워크'의 피터 핀치의 남우주연상 이후 사후(死後)에 오스카상을 받은 두 번째 케이스다.

히스 레저는 골든글로브상과 영국 아카데미상까지 받아 사후에 주요 영화상을 휩쓴 배우로 남게 됐다. 사망 당시 28세이던 히스 레저는 잭 니콜슨이나 시저 로메로 등 중년 배우들이 맡았던 조커 역을 어린 나이에 연기해 영화팬들로부터 사상 최고의 조커로 사랑을 받았다. 그는 광대 분장을 한 악당 정도에 그쳤던 조커에게 교활한 사이코패스이자 매혹적이고 유머러스한 악마의 모습을 불어 넣었다. 그의 열연에 힘입어 '다크나이트'는 전 세계에서 10억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여우조연상은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미술가 엘레나 역을 해낸 스페인 출신의 페넬로페 크루즈가 받았다. 스페인 여배우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올해 가장 많은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시각효과상과 분장상 미술상 등 3개 부문상에 그쳤다.

납관사가 된 전직 첼리스트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는 '굿바이'가 일본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룬 일본 영화 '작은 정육면체 집'(구니오 가토)은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각각 받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