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식의 사진이 글을 버렸다.

10권이 넘게 출간된 포토에세이로 세상과 소통하던 그의 사진이 드디어 글을 버렸다. 사진보다 더 먼저 독자를 사로잡던 글을 포기하고 오롯이 사진만 드러냈다. 200장이 넘는 사진이 수록된 사진집 《천국의 땅,에티오피아》(푸른솔 펴냄)는 신미식이 길 밖으로 나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고 가야 할 길을 찾아보는 첫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이 기록이라면 신미식은 아마추어다. 그의 사진은 기록을 빙자하고 있지만 전혀 기록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사진은 그저 사진이다. 그는 사진으로 먹고 산다. 그래서 신미식은 프로다.

신미식의 사진은 지나치게 깊은 사랑을 지녔다. 안타깝게도 자기 자신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다. 그가 담은 자연은 언제나 선명하다. 코앞에 보이는 풀 한 포기에서 지평선 너머에 솟구친 한 그루 나무까지 티 없이 맑게 보인다.

땅 위에서 숨 쉬는 자갈 하나,대지 위에 서있는 꽃 한 송이까지 더 사랑할 수 없어 아쉬워한다. 그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치 자연 앞에 서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인간이 지녀야 하는 사랑의 정도를 초과했을 때 나타나는 괴리 현상이 사진 속에 묻혀 있다. 그래서 신미식의 사진은 가슴 아프다.

신미식의 자연 속에 담긴 사람들은 늘 뒷모습이다. 자연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자연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그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다만 경외감일 뿐이다. 신미식의 인물은 눈동자 속에 삶이 서려 보일 만큼 가깝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모든 삶을 담으려는 듯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는 자연 안에 인간을 가두고 인간 속에 우주를 담아내려한다. 스스로에게 자유롭지 못한 신미식은 여행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고문한다.

신미식이 길을 버렸다. 길에 중독돼 수없이 많은 길을 찾아 헤매던 그가 사진집에는 단 석 장의 길만 넣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은 모양이다. 앞으로 하늘은 더 내리고 땅을 더 올릴지도 모른다. 사람에게서 조금 떨어져 그들의 삶을 포획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셔터를 누를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그의 영혼은 여전히 따뜻하다. 신미식의 영혼은 아직도 셔터 안에 고립돼 있다.

이번 사진집에 소개된 에티오피아 사진전이 서울 역삼동 신한은행 아트홀(02-558-7116)에서 이달 27일까지 열린다.

정초신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