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 공항에 내리자마자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다 보니 출입국 심사대에서 까다로운 질문을 많이한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그때부터 머릿 속에 예상질문과 답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차례가 돌아와 심사대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백인 여자 앞에 섰다.

"캐나다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밴쿠버와 휘슬러의 관광지를 취재하러 온 한국의 기자입니다. "

영어 문법이 틀리진 않았는지 걱정하던 찰나 갑자기 밝아지는 여자의 표정이 보였다. 그는 웃으며 2010년에 있을 동계 올림픽 이야기를 꺼냈다. 도시 전체가 준비에 몰두하고 있으니 잘 보고 가서 한국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전해 달란다. 걱정은 노파심에 불과했다.

■건강한 삶의 도시

밴쿠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스탠리 공원.시내 서쪽에 있는 이곳은 서울의 여의도 만한 크기로 나무가 많아 밴쿠버의 산소탱크 역할을 한다. 여기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600~800년 정도 된 것들이다. 2006년에 닥친 허리케인 때문에 3000여 그루의 나무가 부러졌다. 밴쿠버 시가 자연적으로 복구되도록 그대로 둔 탓에 나무들이 여기저기 꺾인 채로 누워 있다.

밴쿠버는 피오르드 해안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도시 안쪽까지 바닷물이 들어온다. 스탠리 공원에서는 이 바다에 비친 도시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빅토리아로 가기 위해 바닷물 위로 오르내리는 수상비행기의 모습도 이색적이다. 공원 안에는 장승과 닮은 토템 폴이 있는데 원주민들이 후대에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운타운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캐필라노 계곡도 필수 코스다. 70m 높이에 걸쳐진 140m 길이의 구름다리가 있는데 워낙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다보니 이름도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리지다. 나무는 대부분 삼나무와 전나무다. 밑 부분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1800년대 말 벌목꾼들이 구멍에 널빤지를 끼우고 그 위에 올라서서 나무들을 벴다고 한다. 이곳 나무들의 특징은 땅에 흙이 얇게 덮여있고 그 밑에는 바위로 돼 있는 지반 때문에 죽은 나무를 영양분으로 삼아 큰다는 점이다. 죽은 나무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 70~80년 가까이 어린 나무들을 먹여 살린다.


■활기 넘치는 다운타운

스탠리 공원을 나와 빌딩 숲으로 들어서면 바로 다운타운이다. 롭슨 스트리트 주변의 다운타운은 각종 패션 브랜드와 명품 숍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밴쿠버의 진정한 모습은 좀더 깊숙한 곳에 있다. 롭슨 스트리트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개스 타운이 밴쿠버의 발상지다. '수다쟁이 잭'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영국인 존 데이튼이 1867년 선술집을 차리면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세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느낌이다. 적색 벽돌의 상점에서는 밴쿠버 기념품을 살 수 있다.

진짜 재미는 이런 기념품 가게 사이에 있는 헌책방과 옷가게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다. 스타일 좋은 청바지들 중 비싼 것은 50만원 가까이 하는 것도 있지만 대략 10만원 내외면 살 수 있다. 책먼지 냄새로 가득한 헌책방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보물 창고다. 밴쿠버 뿐 아니라 북미 지역을 아우르는 출판물들이 가득하다. 소설에서 철학,미술사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5권을 한꺼번에 사면 20% 할인받을 수 있다는 직원의 말에 이것 저것 골라 본다. 오래된 책들이 많다보니 학생시절 학교 도서관을 뒤지던 생각이 나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저녁 식사를 근사하게 하고 싶다면 예일 타운이 제격이다. 과거 창고 거리를 개발한 곳으로 레스토랑과 갤러리들이 몰려있다. 아파트도 있는데 수입이 좋고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들에게 인기 있다고 한다. 이 곳도 롭슨스트리트에서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식사를 다했다면 커피 한잔의 여유도 즐겨보자.롭슨 스트리트에 있는 포시즌슨 호텔 옆에 있는 알 티지아노라는 작은 커피숍은 알고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바리스타는 각종 세계 커피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으며 거품으로 커피 위에 그림을 최초로 그리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시킨 커피에는 나뭇잎과 곰돌이를 그려줘 눈과 입이 동시에 즐겁다.

밴쿠버 도심 남쪽에 있는 그랜빌아일랜드는 파주 헤이리와 비슷한 곳이다. 개성있는 미술품과 공예 가게들만이 연방정부의 심사를 받아 이곳에 들어설 수 있다. 미술대학이 안에 있어 자연스럽게 예술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 곳에 있는 퍼블릭 마켓은 유기농 과일과 야채를 파는 곳으로 건강을 중시하는 밴쿠버 시민들에게도 인기있는 장소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곳 광장에 거리 악사들이 나와 연주도 들려준다. 따뜻한 음료수 한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 감상하는 여유가 좋다.

■신나는 야외 액티비티

잭과 함께 가이드를 해준 릭은 전형적인 캐나다 사람이다. 탄산음료는 절대 먹지 않으며 음식도 건강식으로만 가려 먹는다. 개인 트레이너를 두고 운동할 만큼 몸에 신경 쓰는 이다. 기자 중 한명이 별 생각없이 미국인인지 캐나다인이지를 묻자 그는 "미국인은 뚱뚱하지만 캐나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릭처럼 밴쿠버 시민들은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 거리 곳곳에 조깅하는 사람들이 있고 바다 위에는 카누를 젓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다운타운의 명품 숍 안에는 관광객들 뿐이고 현지인들은 볼 수 없다. 이들은 대신 다른 나라보다 유난히 많은 스포츠 웨어 숍을 즐겨 찾는다. 즐기는 운동 별로 신발과 트레이닝 복을 다로 마련할 정도다.

그라우스산은 이런 밴쿠버 시민들의 운동욕구를 충족 시켜주는 곳이다. 해발 1200m에 자리한 전망대까지 대형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이곳에는 스키장 뿐 아니라 스케이트 장과 겨울 눈 트레킹 코스까지 갖추고 있다.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휘슬러도 빼놓을 수 없다. 휘슬러 리조트는 휘슬러 산과 블랙콤 산에 걸쳐 있는 스키장이다. 스키장은 1966년 휘슬러 산에 먼저 개장됐으며 블랙콤 산에는 1980년 뒤늦게 들어섰다. 휘슬러 스키장 리프트권의 종류는 무척 다양한데 스키장 매표소보다 웹사이트(www.whistlerblackcomb.com)에서 미리 구입하는 것이 20% 저렴하다.

휘슬러에서 스키를 제대로 즐기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요구된다. 200개가 넘는 코스가 있기 때문에 초급자나 중급자가 2~3번 내려오다 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스키 외에도 스노우 모바일과 스노우 튜빙이라는 액티비티도 있다. 스노우 모바일은 스키장에서 구조요원들이 눈 위를 가로지르며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연상하면 된다. 이것을 타고 휘슬러산과 블랙콤 산을 누빌 수 있다. 운전법이 쉽기 때문에 초보자들도 탈 수 있다. 단 안전 요원들이 맨 앞에서 제한된 속도로 가기 때문에 함부로 속도를 낼 수는 없다.

스노우 튜빙은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튜브를 이용해 썰매를 타는 것이다. 빙글빙글 돌며 경사면을 내려오는 재미가 스키보다 더 스릴있다.

'휘슬러 빌리지'는 메인 빌리지,블랙콤 산 밑에 있는 어퍼 빌리지,그리고 아래쪽의 그릭사이드 등 3곳으로 나뉜다. 어퍼 빌리지와 그릭사이드는 조용하지만 편의시설이 많지 않고 스키장에서도 10분정도 걸어서 가야한다. 메인 빌리지는 박물관,도서관에서부터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이 있지만 가격이 두곳과 비교해 비싸고 밤에도 지나다니는 스키어들로 시끄러울 수 있다.

밴쿠버에서 휘슬러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의 풍광도 빼놓을 수 없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지는 길의 왼편에는 차가우리만치 파란 피오르드의 바다빛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눈 덮인 새하얀 산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여행 Tip>

에어캐나다와 대한항공이 캐나다 밴쿠버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10시간30분.한국보다 17시간 늦다. 통화단위는 캐나다달러.요즘 환율은 현금매입 기준 1캐나다달러에 1208원 내외.MP3 등을 충전하기 위해서는 110볼트용 플러그를 준비해야 한다. 밴쿠버 시내관광은 지붕이 없는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휘슬러 빌리지와 밴쿠버섬의 빅토리아는 걸어서 구경하기 충분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관광청(02)777-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