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 소설가 2명의 색깔 있는 사랑 소설이 나란히 번역출간됐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인 요시다 슈이치의 《사랑을 말해줘》(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와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로 잘 알려진 쓰지 히토나리의 《태양을 기다리며》(신유희 옮김 · 소담출판사)다. 《사랑을 말해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남자와 청각장애인 여자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항상 소리에 노출되어 살던 남자와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침묵의 세계에 살던 여자는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남자는 '우리가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주위는 시끄럽게 느껴지는 게 당연할 텐데,교코와 함께 있을수록 주위의 소리는 사라져갔다'고 느낀다. 그러나 바쁜 업무에 몰두하던 남자를 남겨두고 여자는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이들의 조용한 사랑은 소리와 침묵이라는 두 남녀의 상반된 세계,남자가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의 소재인 바미안 대불 폭파 사건과 홀연히 사라진 여자의 유사성,의사소통으로 남자가 사용하는 구어와 여자가 사용하는 문어의 차이와 맞물리며 선명하게 드러난다.

《태양을 기다리며》는 1937년의 난징,1945년의 히로시마,1970년의 도쿄,세기말의 신주쿠를 오가며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소설은 이노우에 감독의 영화 '태양을 기다리며' 촬영에 참가하고 있는 시로 앞에 총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그의 형 지로가 맡겨놓은 가방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남자 후지사와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가슴 아픈 사랑과 관련이 있다. 시로는 형의 옛 연인 도모코를 사랑한다.

이노우에 감독은 1937년 난징에서 중국 여배우 훼이팡을 사랑했으나 눈앞에서 그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후지사와의 아버지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살고 있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소설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적 비극에 휘말린 과거의 두가지 사랑과 가족사적 곤경에 부딪친 현재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한편 도모코와 시로는 지로의 가방 속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모두 없애주는 마약 '루즈 마이 메모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도모코의 머릿속에서 형에 관한 기억을 지워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로와 아무리 해도 잊혀지지 않는 지로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도모코는 마약을 앞에 두고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지로가 죽음을 맞으면서 이들은 '안고 살아가자.그게 남겨진 자의 몫이야'라는 깨달음을 얻고 과거의 잔해 위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