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사색보다 행동을 중시했다. 젊은 시절에 그가 쓴 일기를 보면 자기계발의 원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언제나 대화를 장악할 것, 크고 침착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할 것,대화의 시작과 마무리를 주도할 것,언제나 나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들과 사귈 것,잠을 가급적 적게 잘 것' 등이 그의 생활수칙이었다. 이렇게 투철한 목표의식 덕분인지,아니면 타고난 재능 덕분인지 톨스토이는 실제로 크게 성공했다. 나이 오십에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같은 불후의 명작을 쓴 위대한 작가이자 광활한 영지의 주인이며 대가족의 존경을 받는 가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무섭도록 허탈해지는 게 아닌가. 텅 빈 가슴 속에서 찬바람이 휭휭 불고 인생에 대한 회의가 밀물처럼 몰려오는 것 아닌가.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이런 회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톨스토이는 급기야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중년 남자의 위기'라고 부르기에는 증상이 심각했다. 그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지나간 세월을 뼈아프게 반성했다. 젊은 시절 한때의 주색잡기도 반성했고 자기가 쓴 대작 소설들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인류에게 가르치는 데 여생을 바치기로 굳세게 다짐했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인류의 양심'이니 '세기의 현자'니 '위대한 스승'이니 하는 별칭이 붙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해답을 찾기 위해 톨스토이는 실로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글을 썼다. 중년의 위기 이후 그가 쓴 글은 대부분 철학이나 형이상학이나 종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보통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이었다.

그는 쓸모없는 지식과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과 불필요한 교양을 모두 거부했다. 또 종교가 약속하는 '저 세상'의 행복도 거부했다. 그는 이성의 메스를 손에 쥐고 종교를 해부했고 실망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중에서 필요한 것은 취하고,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다시 쓰고,불필요한 부분은 버렸다. 러시아 교회는 참다 못해 이 무례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현자를 내쫓아버렸다. 그러다가 위대한 스승 톨스토이는 한 가지 결론에 봉착했다. "나는 아주 오랜 의혹과 탐구와 사색의 길을 더듬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진리에 도달했다. 즉 사람이 눈을 갖고 있는 것은 물건을 보기 위해서이고,귀를 갖고 있는 것은 듣기 위해서이며,다리를 갖고 있는 것은 걷기 위해서이며,손과 등을 갖고 있는 것은 일하기 위해서이다. " 세기의 현자가 오랜 방황 끝에 도달한 결론치고는 정말이지 놀랍도록 간단하다.

톨스토이는 이 진리를 토대로 《바보 이반》이란 우화를 지어냈다. 이 우화의 주인공 이반은 러시아 민담에 등장하는 다른 바보들처럼 무식하고 우둔하고 미련하다. 그런데 민담의 바보들이 대부분 게으른 데 반해 이 바보는 매우 부지런하다. 그는 '손과 등은 일하라고 주어진 것이다'라는 톨스토이의 좌우명을 그대로 실천한다. 그리고 똑똑한 형들이 모두 몰락하는 것과는 달리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지고의 행복에 도달한다.

악마가 바보 이반을 유혹하기 위해 "영리한 사람들은 손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슬쩍 찔러본다. 그러자 바보 이반은 바보답게 대꾸한다. "바보인 우리가 그걸 어찌 알겠소.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대부분 손과 등으로 한답니다. " 악마는 결국 유혹에 실패하고 제풀에 나가 떨어진다. 이반의 바보 나라는 무적이다. 워낙에 모두들 바보이다 보니 외부의 그 어떤 논리도 유혹도 꼬임도 파고들 수가 없다. 바보 나라는 영원무궁토록 행복하다.

톨스토이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행복하게 되려면 바보 이반처럼 살라는 것이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제 손으로 저 먹을 것을 마련하고,착하게 살고,거짓말 하지 말고,남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스승께서 30년간을 헤매다가 찾아낸 진리다.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해도 먹고 살기 힘든 요즘 세상에 바보처럼 살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요즘 세상뿐이 아니다. 톨스토이가 살아있던 시절에도 그것은 꿈 같은 가르침이었다. 그렇다면 톨스토이 같은 천재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톨스토이처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어째서 시대와 한참 동떨어진 그런 말을 가르침이랍시고 주었을까.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지식의 부정도 아니고,무지몽매의 추종도 아니다. 톨스토이는 삶의 굴곡과 명암을 다 꿰고 있었다. 너무도 현실적인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지식과 재능 바깥에도 성공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행복으로 가는 여러 다른 길과 여러 다른 차원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꼼수보다는 진실과 근면과 베풂 같은 근본적인 선한 자질들이 무섭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인간다운 삶을 지켜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너나할 것 없이 어려운 시절이다. 그래서 문득 톨스토이의 바보가 생각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