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용수가 달려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수도 팠지만 헛일이어서 대부분의 물을 밖에서 사오고 있습니다. "

강원도 홍천군 상오안농공단지에 있는 홍천폴륨의 김영태 생산과장은 겨울 가뭄의 피해를 이렇게 설명했다. 콘크리트 블록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최근 생산량을 하루 100t에서 50t으로 절반가량 줄였다. 상오안농공단지 내 다른 업체들도 물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업체별로 하루 40여만원씩을 들여 물을 사오고 있지만 필요한 물량엔 턱없이 모자란다. 최만철 단지협의회장(삼성전기 대표)은 "가뭄이 5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그때까지 애꿎은 업체들만 물값으로 매달 수백만원씩 지출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5개월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전국이 신음하고 있다. 18일 강원과 영호남 등 전국에 걸쳐 1~10㎜ 안팎의 비와 눈이 내렸지만 오랜 가뭄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식수난에 시달리는 산골마을에서부터 용수 부족에 허덕이는 공단과 관광단지에 이르기까지 피해 지역은 확산되는 실정이다.

강원도의 경우 태백시와 정선군 사북 · 고한,삼척시 도계읍,영월군 상동읍 등지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이원과 오투리조트,블랙밸리 등 태백권 대형 리조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차량 비상급수를 통해 콘도,호텔 등을 근근이 운영하고 있으나 물 공급량이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어 설연휴를 전후한 성수기 영업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태다.

영남과 충청지방도 주요 댐의 저수율이 30%대로 떨어지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경북 영덕의 경우 물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대게상가들과 인근 식당가의 영업이 차질을 빚는 등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

밭작물 피해도 늘고 있다. 안동과 의성 등지의 들녘에는 봄에 출하될 쌈배추와 한창 생육기에 있는 마늘,양파 등이 누렇게 말라죽은 채 방치되고 있다.

충북 제천과 옥천,충주 등지에서도 지하수가 고갈돼 작물에 물을 공급하던 스프링클러도 한 달 넘게 작동을 멈췄다. '명지대파'로 유명한 부산 강서구 명지들판 곳곳에서도 출하를 포기한 대파들이 밭에서 말라죽고 있다.

특히 '80년 만의 최악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경남지역은 상황이 심각하다. 합천군 함양군 산청군 주민들은 생활용수가 없어 수돗물이 공급되는 인근 도시로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가뭄을 견디다 못해 농사를 포기한 채 진주 아들집에 왔다는 고모씨(64)는 "지하수를 파도 파도 물이 안 나와 물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많다"면서 "60평생에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뭄은 이웃 간 인정도 메마르게 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 임자면 하우마을 주민과 대기마을 주민들은 인근 저수지의 물을 놓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기 마을이장 임홍연씨(65)는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가뭄이 계속되면 하우마을 주민들은 물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면서 "서로 형제처럼 사는 마을이 물 때문에 감정이 상할 수도 있게 됐다"고 걱정했다. 전남지역에선 이번 가뭄으로 모두 14개 시 · 군 134개 마을의 8000여 가구 주민이 격일제와 시간제 급수를 받고 있다.

부산=김태현/태백=하인식/광주=최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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