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경제와 정치 상황이 암울하면 사람들은 종종 현실을 벗어나 좀 더 나은 세계,파라다이스(천국)를 꿈꾸게 된다. 천국은 평화와 번영 행복이 가득한 이상적인 장소를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천국이란 어디일까. 이 세상 어디엔가 인간에게 숨겨져 있는 비밀의 장소일까,아니면 사후에 선행을 쌓은 사람들이 가는 장소일까. 특히 종교를 열심히 믿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사후에 '천국(또는 극락)'에 갈 수 있을까. '천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 동산'이다. 에덴 동산은 《창세기》에 첫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거주한 장소로 등장한다. 에덴은 피손 강,기혼 강,히-데켈 강(티그리스 강),그리고 퍼라트 강(유프라테스 강)의 근원이라고 소개된다. 에덴 동산의 위치는 기원후 1세기 유대 사학자 요세푸스 시대부터 성서 주석가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들의 관심은 《창세기》에 등장하는,에덴에서 흘러나왔다는 네 강의 위치 파악에 모아졌다. 히브리어로 '히-데켈'과 '퍼라트'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피손은 '샘물이 솟다', 기혼은 '(물이) 터져 나오다'라는 의미로 고유 명사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피손 강이 인더스 강이나 갠지스 강이며 피손이 흐르는 땅 '하윌라'가 인도 또는 아라비아 반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기혼 강은 이집트의 남부 에티오피아 지역을 지칭하는 '쿠스' 지역과 관련 지어 나일 강이라고도 한다. 피손과 기혼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네 강의 발원지를 찾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에덴'이란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에덴'은 고대 수메르어 '에딘(EDIN)'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수메르어 '에딘' 기원설은 니느웨(고대 앗시리아의 수도,현재의 이라크 모술)에서 발견된 수메르어-아카드어 사전목록 토판 문서에 등장한다. 여기에서 '에딘'은 일반 명사로 '평원'이란 의미이다. '에딘'은 특히 수메르 문헌에서 '딜문'이란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선 병이 들거나 늙지 않고 늑대와 양이 사이좋게 지내며 아름다운 과일이 자라고 동산지기가 그곳을 지키고 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는 '에덴'이 '풍요,기쁨'이라는 의미를 가진 셈족어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이는 '파라다이스'와 연결되어 있다. 구약 성서를 기원전 2세기께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은 에덴 동산을 '풍요의 정원'으로 번역했다. 이때 '정원'이란 의미의 그리스어가 바로 '파라데이소스(παραδεισοs)'다. 영어의 파라다이스(paradise)는 라틴어의 파라디수스(paradisus)와 그리스어의 파라데이소스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는 기원전 3세기께 그리스의 역사학자 크세노폰이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이 단어는 당시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으로 문화적 접촉을 통해서 생겨난 페르시아 차용어다. 이 단어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란어인 아베스타어와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처음으로 쓰였다. 아베스타어로는 '둘러싸인 공원'이란 뜻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건설자 고레스가 파사르가데(Pasargadae)에 수도를 정할 때 자기가 정복한 나라에서 구한 진귀한 동물들과 식물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파라다이스'라 칭하였다. 지금도 이곳에 가면 이 파라다이스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어원을 되짚어 봤을 때 '에덴'이란 우리가 상상하는 사후 세계라기보다 신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는 곳,인간과 인간의 차별이 없는 곳,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약시대 예수는 자주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한다. 특히 하늘나라의 도래 시점을 질문받았을 때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전한다. 하늘나라는 바로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무형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하늘나라'가 바로 이 장소에,이 시간에 오기 위해 '회개'를 주문한다. '회개'는 과거의 죄로부터의 결별과 결심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시각에 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회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슈브'이며 예수가 사용하던 아람어로는 '타브'이다. 이 단어는 근본적으로 '뉘우치다(repent)'라기보다는 '회복하다(restore)' 혹은 '돌아오다(return)'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회개의 의미는 소극적으로 죄를 용서받는 과정을 넘어서 신이 인간에게 본래 허락한 '신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작업이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일종의 신성모독이었다. 결국 예수는 이것을 주장하다 신성모독 죄로 죽임을 당했다.

'하늘나라'는 또한 장소나 시간 개념이 아니다. '나라'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말쿠쓰'(아람어로 '말커싸')이며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통치(reign)'다. 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올바로 성립되는 상태이면 시 ·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장소에서나,어느 시간이나 '하늘나라'가 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하늘나라'는 종교나 이념과 같은 인간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나와 다른 사람들,즉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삶이 팍팍할수록 내 주위의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파라다이스로 들어가게 하는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