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문양도 없이 단순하지만 지루하지 않고,아무런 채색도 없이 소박하지만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기품있는 자태.

설과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한국인의 심성을 닮은 백자 달항아리와 이를 소재로 한 미술 작품을 모은 전시회가 마련된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오는 15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열리는 '화가와 달항아리'전이다.

경제위기를 딛고 풍요와 복을 기원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 수준급 백자 달항아리 3점을 비롯해 인기작가 김환기 도상봉 고영훈 강익중 김덕용씨가 달항아리를 소재로 그린 그림,조각가 정광호씨의 설치 작품,명품 도예가 한익환 박부원 박영숙 권대섭 신철 강민수 김은경 양구 강신봉씨의 작품,달항아리에 매료된 구본창씨 사진 등 80점이 나온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달항아리의 미학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국내 근 · 현대 미술의 개척자인 김환기 화백은 하얀 백자를 통해 한국적인 정서와 향토적 미감을 유감없이 표현해냈다.

그의 작품 '항아리''항아리와 여인''항아리와 매화가지' 등에서는 한 편의 서정시가 펼쳐진 듯 밝고 명쾌한 회화적 특징이 느껴진다.

달항아리의 멋에 심취했던 도상봉 화백의 '정물''개나리' 역시 달항아리의 해맑은 미감을 포근하게 채색한 작품.어린애처럼 청정무구한 정신 세계를 응축해내며 꽃병과 함께 달항아리가 단아하게 놓여 있다.

또 극사실주의 작가 고영훈씨의 작품은 여백의 미와 어우러져 동양적 질감을 잘 살려내고,김덕용씨의 작품은 도자기의 운치를 서술적으로 풀어냈다.

조각가 정광호씨의 설치 작품은 차갑고 인공적인 철사로 만든 질박하고 뽀송뽀송한 옹기를 통해 전통미를 되살려냈다.

두 개의 반구(半球) 모양을 이어 붙여 높이 50㎝가량의 달항아리를 만든 도예가 박영숙씨의 작품은 표면의 질감이 여인네의 우윳빛 뽀얀 속살처럼 곱고 풍만하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달항아리는 물과 함께 동양적 감성의 표상으로 화가들이 변함없이 사랑하는 소재인 동시에 작품의 서정성을 표현하는 조형 언어"라며 "경제가 어려운 때인 만큼 관람객들이 전시 작품을 보고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15일과 2월1일 오후 2시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달항아리 강연회도 열린다. (02)519-08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