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인들은 독서광이다. 인터넷이 세상을 휩쓸고 있지만 일본에선 여전히 신문과 책 등 인쇄물의 인기가 높다. 경제대국답게 경제 · 경영 관련 서적이 특히 잘 팔린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경제서적은 어떤 책들일까.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신년 특집(1월3일자)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 · 경영학자 2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겨울휴가 때 읽을 만한 도서 베스트 20'을 발표했다. 현직 일본은행 총재가 쓴 《현대의 금융정책,이론과 실제》가 당당히 1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이어 《폭주하는 자본주의(한국에서는 《슈퍼 자본주의》로 번역됨)》 《애덤 스미스》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경제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고용,이자 및 화폐 일반이론》 《격차는 만들어졌다》 《현대세제개혁사》 《마쓰시타전기의 경영개혁》 《반빈곤》 등이 10위권에 포함됐다.

전문가들이 추천한 경제서는 △격차문제 등 현 경제사회에 대한 비판서 △정책 담당자의 저술서 △경제학의 고전을 재평가한 책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경제사회의 현상을 비판하고 의문을 제기한 책들이 대거 상위권에 올랐다. 2위에 랭크된 《폭주하는 자본주의》,4위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7위 《격차는 만들어졌다》 등이 해당된다.

히토쓰바시대학의 기타무라 노키노부 교수는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파급되면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시대의식이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빌 클린턴 정권에서 노동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대 교수가 쓴 《폭주하는 자본주의》는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서다. 1970년대 말 시작된 슈퍼 자본주의가 시민사회를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쇠퇴시켰다는 주장이다.

1970년대 말 이후 새로 개발된 아이디어와 기술로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근대 시민혁명이 안겨준 '시민'이란 정체성을 잃고 저비용과 고소득을 추구하는 '소비자 · 투자자'가 됐다. 슈퍼자본주의는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주었지만 시민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무너져 새로운 대응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의 《격차는 만들어졌다》는 경쟁에 낙오해 빈곤층으로 몰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격차 문제를 다뤘다. 격차는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기득권층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장됐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현행 자본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그래도 최선의 제도인 만큼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대처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1위를 차지한 《현대의 금융정책》,8위 《현대세제개혁사》,12위 《파란의 시대》 등은 정책 담당자들이 저술한 책이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는 30년 이상 금융현장에서 근무해온 실무경험을 집대성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제로금리와 디플레 방지 대책 등 금융전문가로서의 철학이 담겨 있다.

3위 《애덤 스미스》,6위 《고용,이자 및 화폐 일반이론》 등 경제학 고전도 인기가 높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이 기능하도록 내버려두라는 자유방임주의자 스미스의 철학과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의 원인과 극복 방안을 제시한 케인스의 책이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