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종철씨(62)가 일곱 번째 시집 《못의 귀향》(시학 펴냄)을 출간했다.

1992년 시집 《못에 관한 명상》에서 '가슴 속에 박힌 대못'의 아픔과 '구부러진 못대가리'들의 슬픔을 얘기했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못'과 '망치'의 은유를 계속 펼친다.

'이제는 망치를 들어도 좋을 나이입니다 /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습니다 / 눈 감고 못 박아도 / 세상의 뒤편인 손등은 찧지 않습니다 // 현자는 / 눈을 감고 자도 / 밤은 수족같이 밝은 법 / 솜씨 좋은 목수는 / 어린 나뭇결만 보아도 / 성근 제 뼈를 다 읽는 법 // 이제는 누구의 관 뚜껑인들 망치질 못 하랴 / 이제는 한밤에 못질 되어도 좋을 나이입니다.'(<망치를 들다> 중)

그는 스스로 '못'이 되어 목수의 손가락 끝에 서기도 하고,망치질과 못질의 경계에서 관뚜껑을 덮기도 하면서 신혼 시절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아내의 십자가'가 됐던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본다.

'이제는 환갑에 이른 내가 / 아내의 십자가에서 내려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 개밥바라기별이 뜰 때까지 / 망치 든 자는 못대가리만 보고 있습니다 / 저무는 당신의 강가에는 / 아직 세례자 요한이 오질 않았습니다. '(<아내의 십자가> 중)

지난해 등단 40년을 넘긴 시인이 유년기의 아릿한 추억을 되살린 '초또마을' 연작도 신선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눈물겨운 기억들과 국수 장사로 4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사연,그 어머니의 제사상에 모여 시금치와 콩나물,열무김치,고사리나물에 고추장을 버무리는 자식들의 손놀림까지 애잔하게 펼쳐보인다.

'어머니는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로 갔습니다 / 밤나무 숲에 이르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캄캄해졌습니다 / 그 순간 우물에서 무지개가 솟아올랐습니다 / (중략) / 어머니 태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내 나이 이순,몸 깊이 숨겨 둔 / 당신의 무지개가 / 저세상 잇는 다리로 다시 뜨는 날 / 나는 한 마리 학 되어 / 한 생애를 날아오를 것입니다.'(<어머니의 장롱-초또마을 시편ㆍ2>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불어 터진 국수'라고 했다. 그 속에는 '눈물보다 부드럽게 불어 터진 가난'과 '쓰러지다 일어서는 시장기'의 그리움이 녹아 있다.

또 다른 연작 '순례 시편'은 과거와 현재의 '초또마을'을 지나 새로운 성지를 찾아 떠난 '길 위의 시편'들.그러나 종교적 경건함이나 존재의 근원을 함께 비추는 '참나'의 뿌리라는 점에서 '초또마을 시편'과 맞닿아 있다.

'환갑 진갑 지나는 / 순례의 첫 밤 / 그 첫날밤의 꼭두새벽 / 두 딸년이 마련해준 여비로 / 일생의 꿈 마무리하듯 기도하다가 / 손에 불 덴 아이처럼 쩔쩔매는 / 노인네를 보게 되었는데 / 그 굽은 못대가리가 / 바로 나였다니!'(<개똥밭을 뒹굴며-순례 시편ㆍ5> 중)

이 같은 발견을 통해 시인은 '못 박고 / 못 빼는 일'이자 '한 몸에 구멍난 천국과 지옥 / 몸 바꾼 당신이 소풍가는 날'(<못의 부활> 중)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