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웨어 ODM기업 '정경에이치엘피'

2008년 12월31일.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에 있는 골프웨어 전문업체 정경에이치엘피의 직원들은 쉴 틈 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원단을 재단하는 가위질 소리와 일정하게 박자를 맞춘 듯한 경쾌한 재봉틀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한 직원은 "일감이 없어서 연말연시에 쉬는 회사들이 많다고 들었다"며 "한가한 것보다 이처럼 바쁘게 일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정경에이치엘피는 지난해 전년 대비 무려 70%의 성장세를 보이며 약 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회사 이름은 생소하지만 정경에이치엘피는 골프웨어 업계에선 최고의 전문 ODM(제조자 디자인 생산) 기업이다. 해외 브랜드로 세계 골프웨어 1위 기업인 잭 니클라우스를 비롯 벤 호건(미국) 보그너(독일) 엘르(프랑스)에, 국내의 경우 코오롱,앙드레 김,신한코리아 등 12개 국내외 회사에 납품 중이다. 실제로 시중에서 팔리는 골프 의류의 꼬리표를 보면 어김없이 회사명이 제조원으로 찍혀 있다.

회사를 이끌고 있는 김춘오 대표(45·왼쪽)는 20년 가까이 골프웨어만 만들어 온 골프웨어의 '달인'.지금도 모든 제품의 디자인과 시제품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김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골프웨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이었던 1989년.여성복 전문업체에서 근무하던 그는 소득이 늘면 골프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이란 판단 아래 지인과 함께 동업 형태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문업체가 없던 시절이라 국내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며 순항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섬유업계 전체가 도산과 폐업에 직면하자 회사도 재고가 넘치면서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됐다. 김 대표는 고민 끝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역발상을 실천에 옮겼다. 남들이 가격을 깎고 비용을 줄일 때 오히려 고급 제품을 만들거나 같은 값에 더 좋은 품질로 승부를 걸겠다고 결심한 것.비싼 원단을 사용하고 재봉을 더 꼼꼼히 하는 등 품질에 집중하자 오히려 외환위기 전보다 매출이 늘어났다.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해외 유명 브랜드 업체들까지 정경에이치엘피에 연락을 취해 제품 공급받기를 청할 정도였다.

회사는 최근 자체 브랜드를 준비하며 세계 시장을 직접 공략할 채비도 갖추고 있다. 김 대표는 "10년 뒤에는 우리 브랜드로 세계적인 골프웨어 업체가 돼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