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참사를 기억하시는지요. 발사 전날 저녁,챌린저호 부품생산 업체 기술자들이 미국우주항공국(NASA)에 발사 연기를 요청했습니다.

보조 로켓 이음매인 오링의 탄력성이 섭씨 11.6도 아래에서 급격히 떨어지는데,발사 당일 예상 온도가 영하 7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는 '5분' 동안의 긴급 간부회의 끝에 발사 강행을 결정했습니다. 기술자들은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했지만 "경영진 자리를 넘보는 것 아니냐"는 오해만 받았지요. 그렇게 로켓은 점화됐고,발사 73초 후 탑승자 7명 전원과 함께 공중분해되고 말았습니다.

개인과 조직이 어떻게 오류에 빠지고,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똑똑한 사람들도 밥그릇이 달린 문제 앞에서는 객관성을 잃기 쉽지요. 어디 중대한 일만 그럴까요. 우리도 하루에 몇 번씩,크고 작은 문제들을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굳게 믿었던 지식이 빗나가고,믿었던 사람이 배신하면 누구나 엄청난 피해를 당합니다.

미국의 철학자 마이클 필립스는 《지식,철학의 법정에 서다》(갤리온 펴냄)에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려면 믿을 만한 지식과 믿어서는 안 될 지식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속임수와 거짓말을 지구 끝까지 추적하는 철학 경찰관'을 자처하는 그는 '우리 자신이 오류 투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자'고 말합니다. '기억'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되는군요. 챌린저호 참사 목격자들의 답변이 3년 후 달라졌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입증합니다.

그는 전문가 집단마저 '지식 기계'의 오류에 빠져 있다면서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논리로 침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미국 의학계,연구비와 명예의 유혹에 굴복해 실험을 조작하는 과학계,반대이론은 철저히 무시하는 심리학계 등을 예로 듭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늘 인정하면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생각의 프레임을 구축하는 게 왜 중요한지'를 거듭 일깨워줍니다.

고수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