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범의 유럽문화기행'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정석범씨는 유럽 주요 도시 명소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그 장소와 관련 있는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읽어내는 독특한 글쓰기로 독자 여러분의 유럽 여행길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는 한양대,고려대,홍익대 대학원을 거쳐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미술사가입니다. 현재 고려대 및 홍익대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이 있습니다.

고독한 언덕, 보헤미안적 삶 스케치해요


나는 벌써 몇 번째 영화 '아멜리에'(정확한 발음은 '아멜리'가 맞다)의 라스트 신을 반복해서 보고 있는지 모른다. 자전거를 탄 두 남녀가 환희의 표정을 지으며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간다. 여자는 핸들을 잡은 남자의 등에 자기 몸을 밀착한 채 한 손으로 남자의 눈을 가린다. 그 환한 얼굴엔 장난기와 사랑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남자도 호기롭게 한 쪽 핸들에서 손을 떼었다 잡았다 하며 곡예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위험 천만한 제스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상대편에 푹 빠져 있다. 두 사람의 환한 웃음은 질주의 쾌감 속에서 유쾌한 시각적 화성(和聲)을 이룬다. 그들이 짓고 있는 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유쾌한 시각적 화성(和聲)

영화의 주인공 아멜리에 풀랭(오드리 토투 분)은 몽마르트르에 사는 깜찍한 용모의 아가씨다. 그녀는 학교라고는 근처에 가본 적도 없다. 어릴 적부터 수줍음이 많았던 아멜리에는 군의관인 아버지가 청진기를 갖다 댈 때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는데 아버지는 이것을 딸 아이가 심장병에 걸린 걸로 오해,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그녀는 목석 같은 아버지와 히스테리컬한 어머니 아래서 악몽 같은 유년시절을 보내고 그러한 가운데 점차 상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아멜리에의 이런 성향은 성당에 간 엄마가 종탑에서 투신자살하는 여인에 깔려 죽고 난 후부터 더욱 심해진다.

성인이 된 아멜리에는 몽마르트르의 한 카페에 취직하고 아버지의 집을 나와 그 부근에 정착한다. 그렇지만 아멜리에는 여전히 고독의 밀실에 자신을 가둔 채 영화관에서 사람들 얼굴 훔쳐보기,생 마르탱 운하에서 물수제비 뜨기 등에서 위안을 찾는다. 고독의 심연에서 니노(마티유 카소비츠 분)를 만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지하철 역의 사진자판기에서 다른 사람이 찢어버린 사진을 줍고 있는 한 남자를 목격한 것이었다. 니노라는 이 남자는 포르노숍 점원으로 사람들의 발자국 사진 찍기,남이 버린 증명사진 모으기가 취미였다. 아멜리에는 그를 관심있게 지켜보다 우연히 그의 사진첩을 줍고 자신도 모르게 니노를 사랑하게 된다. 니노도 그녀가 자신의 반쪽임을 깨닫는다.

보헤미안적 삶의 상징

아멜리에의 이웃도 고독하기는 매한가지다. 뼈가 약해 유리 인간이라는 별명을 가진 노화가 레이몽 뒤파엘은 20년째 자기 방에 틀어박혀 르누아르의 그림을 모사하고 있고 전직 웨이트리스인 마들렌은 40년 전에 실종된 남편을 아직도 기다리며 눈물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서로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 채 망원경으로 서로를 관찰한다. 장 피에르 주노 감독의 영화에서 몽마르트르는 인간적 유대감을 상실한 고독의 언덕으로 극한의 소외에 처한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을 상징한다.

그러나 아멜리에와 그 이웃들이 살고 있는 몽마르트르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보헤미안의 메카로 통했다. 3세기 중엽 성(聖) 드니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해서 순교자의 산(Mont Martre)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이 거룩한 언덕이 유명세를 타게 된 배경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수녀님들이 성당에 필요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약삭빠른 상인들이 이곳에 하나,둘씩 술집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파리 관할권 밖에 있던 이곳은 얼마 안가 기분 전환을 하려는 파리 사내들의 천국이 되었다. 웬만한 취객의 객기쯤은 너그러이 포용할 만큼 이곳의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1860년 몽마르트르가 파리에 편입되면서 언덕 왼편의 피갈 광장 일대는 파리 최고의 유흥가로 떠오른다. 물랭 루즈(Moulin Rouge,붉은 풍차) 같은 대형 카바레가 들어선 것도 바로 이즈음이었다. 이곳에서는 캉캉춤 같은 퇴폐적인 공연들이 공공연히 이루어졌고 이베트 길베르,잔 아브릴 같은 스타급 가수와 무희들이 파리의 남성들을 매혹했다.

이곳에 몰려든 부류는 술꾼 말고 또 있었다. 값싼 주거지를 찾아 외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었다. 이곳의 개방적 분위기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기질의 예술가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19세기 말에는 드가,르누아르,반 고흐,툴루즈-로트렉이 20세기 초에는 피카소,모딜리아니,후안 그리 등이 이곳에서 머물며 현대미술의 초석을 다진다. 그러나 몽마르트르는 1차 세계대전을 고비로 보헤미안의 메카로서의 영예를 파리 남부의 몽파르나스에 내주고 만다. 주택가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는 유흥주점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세로 몽마르트르는 어느새 보헤미안의 자유를 억압하는 숨막히는 공간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무명 작가들이 65도의 독주(毒酒) 압생트(absinthe)를 마시며 예술을 논했던 오 라팽 아질(Au Lapin Agile),르 물랭 드 라 갈레트(Le Moulin de la Galette) 같은 카페는 이제 그들의 흔적을 더듬으려는 낯선 이방인들로 대신 채워졌고 1940년대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테르트르 광장에는 호객에 여념이 없는 초상화가들의 상혼(商魂)이 헝그리 예술혼을 밀어낸 지 오래다.

고독 탈출 방법은 이타적 사랑

그러면 장 피에르 주노 감독은 왜 하필 보헤미안적 삶을 상징하는 몽마르트르를 고독의 상징처로 삼은 것일까? 거기엔 몽마르트르에 실제로 살고 있는 주노 감독 나름의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보헤미안적 삶은 필연적으로 고독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던가? 자신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보헤미안의 비타협적이고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은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충돌을 야기하고 그것은 개인주의적 자폐의 세계로 귀결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헤미안의 상징처인 몽마르트르에서의 탈출은 곧 고독에서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즉 사랑이라는 점을 주노 감독은 우리에게 새삼 재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멜리에와 니노가 사크레 쾨르(聖心)성당이 우뚝 선 몽마르트르를 뒤로한 채 자전거를 타고 언덕 아래로 질주하는 영화의 라스트 신은 우리에게 고독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개인주의의 사생아인 이기적 사랑이 아니라 정서적 교감에 뿌리를 내린 이타적 사랑 말이다. 그래서일까? 둘이 교환하는 사랑의 몸짓은 배경의 사크레 쾨르만큼이나 견고해 보인다. 그것은 희망의 모자이크요,환희의 메아리다. 내가 라스트 신을 반복해서 보는 이유다.

/정석범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