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현대엔지니어링 대표

언제부턴가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쉽게 잊어버리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허물없이 속내를 터 놓을 수 있는 오래된 친구,함께 고민하고 진심으로 의지하며 주어진 목표를 이루어 나아가는 동료들,언제나 마지막까지 나를 지탱해 주는 따뜻한 가족….

우리는 종종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일수록 그에 따르는 책임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그저 늘 그렇게 저절로 얻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김정현씨의 신작 장편소설 ≪고향사진관≫(은행나무 펴냄)은 이러한 '망각'을 눈물겹고도 감동적으로 꾸짖어 일깨운다.

주인공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다 결국 자기도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가족을 뒤로한 채 눈을 감고 만다. 그러나 이 비극 속에서도 책임감으로 시작한 가족부양이 자기희생의 단계를 넘어 보람과 행복으로 승화된다는 인간관계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인지,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마치 옆에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주인공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감동의 여운이 남아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부모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식도,이웃도 사랑할 줄 아는 겁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건 사랑할 줄 아는 거니까…"

저자의 말처럼 ≪고향사진관≫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우리들의 친구 이야기다. 모든 익숙한 것들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사람에 대한 사랑'밖에 없음을 일깨워 주는 소설의 감동이 많은 이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내가 지켜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그래서 생기는 책임감은 짊어지기 버거운 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행복의 근원임을 모두가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한 해를 정리하는 즈음,오늘도 변함없이 내 옆자리를 지켜주는 가족,친구,동료들에게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용준이 했던 말 '사랑해,고마워'라는 말을 넌지시 건네보는 건 어떨까? 인스턴트식 사랑에 물들어 너무나 흔해져버린 이 말이 용준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에 처음으로 전하는 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