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씨 <밤은 노래한다> 출간

"서로의 심장을 꺼내놓고 싸우면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테니까. 역사책이란 그런 사람들의 심장에서 뿜어난 피로 쓴 책이야."

소설가 김연수씨(38)의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는 1930년대 초반 동만주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소설은 혼란 속에서 피를 흩뿌려야 했던 다섯 젊음과 그 젊음 중 하나를 사랑했던 남자의 사연을 축으로 돌아간다.

'사랑 따위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자의 시시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 김해연은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젖어들자 이 무미건조했던 남자는 '정희가 있는 세계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와서 이제 그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깨닫는다. 하지만 혁명조직에 가담하고 있던 이정희는 정보를 빼내다가 발각되어 자살을 택한다. 김해연은 취조 중 이정희가 자신을 이용한 거라는 비웃음을 듣고,지금까지 생각했던 세상이 '완벽하게 가짜인 세계'라는 점을 깨달으며 절망에 빠진다. 이정희는 죽었지만 김해연은 '정희가 있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떠돌다 유격 근거지에 남게 된 김해연은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며 '피로 쓴 역사'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게 된다.

김해연 앞에 펼쳐진 건 우울한 비극이었다. 혁명을 꿈꾸던 박도만 박길룡 최도식 안세훈 등 중학생 네 명과 이정희,어릴 때부터 얽혀지냈던 네 중학생은 성장한 후 의견 차이 끝에 결국 서로를 죽이거나 서로에게 죽는다. 이들의 비참한 최후는 역사적 사건이었던 민생단 사건과 결부된다. 민생단 사건에서 희생된 항일혁명가는 최소 500여명.막상 일제의 토벌로 숨진 사람보다 조직 내에서 서로를 의심해서 죽고 죽인 숫자가 더 많았다. 당시 동만주에서는 조선 공산주의운동,중국 공산주의운동,국제 공산주의운동이 복잡하게 공존했다. 일국일당 원칙에 따라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이 조선인들을 일제의 스파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함께 꿈꾸었던 희망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의심 앞에 무력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본 김해연은 그 때의 상황을 "그들에게 객관주의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주관으로 결정되는 가혹한 세계뿐이었다"고 읊조린다.

<밤은 노래한다>는 참혹한 역사적 사실과 고통스러운 질문을 소설 속에 꾹꾹 눌러담으며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손가락으로 같은 것을 가리키는 듯했으나 고개를 트는 방향이 달라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아야 했던 네 명의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는 김해연은 '세계가 가짜일 때,그리고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반쯤 죽어 있을 때,폭력만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유토피아란 폭력을 은폐하려는 자들의 거짓 관념에 불과하다'며 극단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이정희가 김해연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로 찍은 소설의 마침표는 이정희의 말처럼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평안'을 닮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