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전기 '일당기사'에 수록

현전하는 김천 직지사 대웅전(大雄殿) 현판 글씨를 일당(一堂) 이완용(李完用.1858-1926)이 썼음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발견됐다.

문화유산 연구가인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은 이완용 사후 이듬해인 1927년 '구한국(舊韓國) 내각총리대신 비서관'을 역임한 김명수(金明秀)라는 사람이 그의 전기로 편집해 일당기사출판사(一堂紀事出版社)에서 출판한 '일당기사'(一堂紀事)에서 이완용이 직지사 대웅전과 천왕문(天王門) 현판 글씨를 썼다는 기록을 찾아냈다고 30일 밝혔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일당기사(총 815쪽) 중 '연보'(年譜) 항목에 이완용이 66세이던 다이쇼(大正) "12년 1월11일(양력 25일) 김천군(金泉郡) 직지사(直指寺)에 2종의 편액(扁額)을 서송(書送.써서 보냄)하다.

직지사의 대웅전과 천왕문의 판액(板額)이다"(746쪽)라는 구절이 발견된다.

일당기사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국공립 주요 도서관 통합전산망인 국가전자도서관(http://www.dlibrary.go.kr/)을 통하면 텍스트 전체에 대한 원문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으며, 이 소장이 지목한 쪽수에서 관련 내용이 확인된다.

이 소장은 "1926년 9월1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직지사 대웅전 현판 사진과 현존 현판 글씨를 비교하면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아울러 이 연보에는 직지사 대웅전 외에도 창덕궁 함원전을 비롯한 현판 10여 종 글씨를 이완용이 썼다는 기록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완용은 친일 행적으로 인해 당대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가였다는 점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는 당시 많은 글씨 청탁을 받았으며 독립문 글씨가 그의 필적이라는 사실 또한 유명하다.

서예사 전공인 이동국 예술의전당 학예연구사는 "이완용은 행서와 초서가 뛰어났으며 그의 작품 또한 남아있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215호인 직지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 27년(1649)에 사승, 상원, 계림 등이 중창하고 영조 11년(1735)에 다시 중건된 건물로 조선후기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내ㆍ외부에 많은 벽화와 불단이 남아 있는 점 등이 높이 평가돼 지난 7일에 보물 지정 예고가 이뤄졌으며 다음달 21일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보물 지정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지정 예고는 문화재 지정 절차의 일부이며 통상 한달 정도인 이 기간에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소유자라든가 관리자, 혹은 관할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치게 된다"면서 "이번에 지적된 내용 등을 포함한 안건을 문화재위에 회부해 현판 처리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위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현판이 건축물을 구성하는 일부분인 것은 분명하지만, 글씨를 이완용이 썼다고 밝혀진다 해서 해당 문화재의 보물 지정 여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