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추희명씨(사진)는 오페라계에서 독특한 존재다. 국내 오페라계의 중심세력인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유학파가 아닌,줄리어드 음대 출신에다 오페라에서 역할이 많지 않은 메조소프라노이면서도 '스타'로 꼽히기 때문이다. 중저음의 힘있는 목소리로 서정성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것이 장점이다. 특히 '카르멘'하면 추희명 외에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오는 23일부터 내달 1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오페라단 '카르멘'의 주연도 추씨가 맡았다.

14일 예술의전당 내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카르멘을 몇 번이나 맡았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20번 정도 되는 것 같다"며 "갈라 콘서트 무대에 선 것까지 합하면 100번이 넘을 것"이라고 답했다.

추씨는 2000년 6월 세종문화회관의 기획공연 '카르멘'에서 주연을 맡으며 국내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에 앞서 1999년 겨울에 열린 오디션에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나타나 열창을 한 것은 아직도 유명하다.

당시 줄리어드 음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다니던 그는 우연히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에서 '카르멘' 오디션 공고를 보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오디션 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자 심사위원들이 딱 한가지 질문만 했어요. '그 몸으로 할 수 있겠냐'고요. 공연까지 7개월 정도 남았을 때라 해산하고도 연습시간이 충분하다고 답했죠."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렀지만 국내 오페라계에서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탈리아·프랑스 오페라가 주로 공연되는 만큼 유럽문화권에서 공부하고 온 성악가들이 감탄사,뉘앙스 등을 현장감있게 연기하는 것을 따라갈 수 없었다.

"다행히 저는 줄리어드에서 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 공부에 집중했어요.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한꺼번에 구사할 수 있도록 훈련받아서인지 언어에 대해서는 주변에서도 저에게 물어봅니다. 현지인 수준은 아니지만 오페라 대본을 무리 없이 읽을 정도는 되거든요. "

슬럼프가 올 때는 끊임없이 연습에 매달렸다.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혹독한 비판과 연습뿐이라는 생각에서다. 아직도 매일 30분 이상씩 발성 연습을 하고 일주일 한번씩 '레슨'을 받는다.

"외국에서 유명한 성악가가 오면 반드시 찾아가서 레슨을 부탁해요. 신랄한 비판이 있어야 늘 새로운 마음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거든요. "

그는 이번에 연기할 카르멘에서 색다른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까지 강인하고 요염한 카르멘을 보여줬다면 이번 무대에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가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카르멘의 깊은 내면까지 연기한다.

추씨는 앞으로 매년 한 작품 이상은 카르멘이 아닌 다른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역할이 한 가지에 한정되는 것이 오페라 가수의 역량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메조 소프라노가 필요하면 어느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조연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