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장식장이 놓인 방, 촛불, 하얀새, 피아노, 바이올린, 꽃병, 테이블, 왕자와 공주….

화면은 한편의 동화같기도 하면서 몽환적이다. 거칠고 두터운 오돌톨한 질감은 행복을 채색한 기분이 들게한다.

서양화가 정일(50·경인교대 교수)의 작품은 행복하고 사랑스럽다. 예민하고 시적 상상력이 풍부해 그는 행복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까지 불린다.

그의 개인전이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서울 신사동 예화랑에서 펼쳐진다.

'환희의 변주곡‘이란 주제로 마련 한 이번 전시에는 보통 사람들의 행복한 꿈을 사실적으로 색칠한 작품 50여점이 걸린다.
2004년부터 동화같은 그림을 그렸다는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내 작품의 가장 큰 소재가 된다”며“밝고 화사한 작품의 이미지들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미학 코드”고 설명했다.

“화면에 항상 등장하는 하얀새는 순진무구한 외로움을 표현합니다. 쌍둥이를 낳으면서 화면에도 하얀새가 더 많아졌구요.”

흰색의 마술사라는 애칭이 따라 다닐 정도로 하얀색을 즐겨 사용하는 그는 백색이 우리 전통의 고유 색감인데다 신비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란다.

그의 작품은 셍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처럼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백설 같은 순수함이 화폭에 풀어져 있고 온화하고 감미롭고 꿈꾸기를 권유하는 동심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가슴으로 세상을 보는 듯 한 붓터치와 이미지들 역시 리듬감도 살아 있다.

“잘 가, 이제 내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세상을 잘 보려면 가슴으로 보아야 한다는 거지.네가 그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에 그 장미꽃이 그렇게 중요하게 된 거야...(어린왕자)”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이 행복한 꿈을 색칠한 것은 아니다.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촛불로 형상화해 살포시 불안감을 내비친다.흔들리 듯 불타고 있는 촛불을 통해 불안한 미래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표현한 것.

“유화는 누수된 감정을 표현하기 좋다”는 그는 그림마다 꿈, 추억 등 낭만적인 글귀와 악보에 사용되는 음표를 그려 넣기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예화랑 이숙영 대표는 “정씨의 작품은 행복을 시적 상상력으로 치환해 화면에 되살려냈다”며“행복과 사랑의 주제를 담고있는 만큼 최근 결혼시즌을 맞아 딸 자식의 혼수품으로 정씨의 작품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02)542-5543

김경갑 기자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