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감독 "상황역전극은 가장 즐기는 장르"

'김상진표 코미디'가 있다.

난리법석 소동극에 상황 역전의 묘미가 주는 웃음. 주유소를 습격한 '놈'들이 주유소를 경영하는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시작한 '김상진표 코미디'는 모범생이 조직폭력배 두목이 되고, 싸움꾼이 교사가 되는 '신라의 달밤'을 거쳐 교도소를 탈옥한 두 죄수가 다시 교도소를 들어가기 위해 안달하는 '광복절 특사', 귀신이 인간에게 맥을 못추는 '귀신이 산다'까지.

흥행력을 갖춘 감독으로서 김상진(40) 감독은 '조폭 코미디'가 난무하던 시절에 더 빛을 발했다.

쭉 잘나가던 그가 '귀신이 산다'로 주춤했다.

물론 흥행은 성공한 편이지만 '김상진표'라고 말하기엔 약했다.

이후 영화투자배급사 시네마서비스 업무에 치중해온 그가 올 추석 시즌을 겨냥해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을 내놓았다.

1978년 출간된 일본 추리소설 '대유괴'에서 기본 상황을 따왔으나 한국 상황에 맞게 각색 과정을 거쳤다.

수백억 원대 부자인 국밥집 할머니 권순분 여사가 납치당하지만 어머니에게서 유산을 물려받은 후 모르는 체하는 자식들 때문에 인질을 자처한다.

권순분 여사는 인질범들에게 자신의 몸값으로 500억 원을 받아내라며 코치한다.

이 한바탕 소동극은 이번 추석 가장 강력한 흥행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모처럼 감독으로 복귀한 그는 "납치범이 인질에게 납치당하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해온 상황역전극과 같다"며 "난 코미디의 기본을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고 개성이 부딪치게 한다.

상황의 역전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와 거기서 어떻게 코미디가 발전하는지 보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못된 자식들에게서 다시 유산을 되찾고 자식을 가르치려는 메시지까지 담긴 영화. 김 감독은 '못된 자식'보다는 '다 퍼 준 엄마'를 눈여겨 봐줬으면 했다.

"교훈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자식들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다 퍼주셨죠. 과연 그게 올바른 일이었을까, 생각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후반부 긴 기차신이 등장하며 정점으로 치닫는다.

이 장면에 아쉬움과 미흡함을 지적하는 이도 꽤 있다.

단순한 화면이 긴박한 상황에서 되레 지루함을 줄 수 있고, 이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통해 박진감 넘치는 기차 액션신을 많이 봐왔기 때문. 이 부분에서 그는 느닷없이 '디 워'의 심형래 감독 이야기를 꺼냈다.

"'디 워'가 개봉된다고 했을 때 심 감독님의 의지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개봉 즈음에 벌어진 논란에 대해서는 좀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이겨내신 분입니다.

한국 영화계는 무조건 안된다며 포기하는 게 많아요.

시도조차 하지 않죠. 그래서 멜로, 코미디, 호러, 이 정도입니다.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가장 공을 들인 기차신. 빨리 찍기로 소문난 그가 한 달을 매달렸다.

그럼에도 한계점을 분명히 느꼈다.

"기차라는 놈이 정말 말을 안 듣는 놈이더군요.

U턴도 못해요.

그래서 기관차를 앞뒤로 떼었다 붙였다 난리를 쳤어요.

사실 전 이 작품을 '코믹 어드벤처'라는 장르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코미디도 한 장르만 갖고는 안돼요.

'귀신이 산다'는 코믹 호러로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차승원과 장서희라는 배우로는 안되더군요.

하하. 할리우드와 비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시도해봤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음에는 좀 더 잘 요리할 수 있겠죠. 다소 길다는 지적에 2분30초 가량 잘라냈는데, 아니, 스태프들도 어디를 잘랐는지 모르네요."

그가 공을 들인 건 기차신 외에도 거인 안선녀 컴퓨터그래픽. 최소한 선녀의 움직임만큼은 '300'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너무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관객층을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주유소 습격사건' 때는 20대만이 이해했죠. 30대만 해도 '뭐 이런 게 다 있나'였어요.

'신라의 달밤'에서 30~40대까지 관객층을 확장했고, '광복절 특사'는 좀 더 넓혔다고 생각합니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나문희 선생님을 캐스팅한 순간부터 전 연령층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요.

극장을 잘 찾지 않는 세대에게 따뜻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그가 관객층을 확대하면 할수록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보여줬던 무릎을 치게 하는 전복적 사고는 만나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있다.

"인정합니다.

'주유소…' 땐 안전판이 없었죠. 그런데 점점 더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어요.

'여기서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면 안돼'라는 식으로. 감독의 궁극적 목적은 더 많은 관객이 오길 바라는 건데 대중을 포용하려다 보니 오히려 대중이 싫어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언젠가 '주유소…' 같은 영화를 다시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 나문희를 떼어놓고 이 영화를 말할 수 없다.

늘 바빴던 나문희는 요즘 더 바쁘다.

"연기 정말 잘하십니다.

사실 '거침없이 하이킥'이랑 동시에 촬영해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이킥'에서는 구박당하는 면을 주로 보이는데 여기서는 카리스마로 확 잡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딱 구별을 지으시더군요.

정말 놀라울 정도였어요."

그러면서 김 감독은 나문희를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라고 표현했다.

또 한 명의 바쁜 배우 김수미와는 좀 다른 이미지라면서.

유해진과 강성진, 두 배우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만약 설경구나 차승원이 캐스팅됐다면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색깔을 냈을 겁니다.

안정적이고, 모나지 않은 연기를 하며, 저랑 아주 잘 맞죠."

앞으로도 그는 코미디에 천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각적인 관객의 반응을 볼 수 있어 좋고, 관객이 내 영화를 보며 웃어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라면서.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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