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7년 충남 조치원 장터.사당패의 놀이판에 다섯살 짜리 무동이 나타났다.

사미승복 차림으로 어른들의 어깨에 올라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새미'역할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김덕수.세상 물정 모르는 코흘리개의 '눈부신 데뷔무대'였다.

2년 뒤인 1959년,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그는 '귀신같이 장구를 친다'는 갈채를 받으며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1978년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사랑.스물 여섯살 청년으로 성장한 그가 장구를 앞에 두고 앉았다.

그 옆으로 쇠를 든 김용배와 북잡이 이광수,징을 잡은 최종실이 함께 했다.

이들의 꽹과리·징·장구·북의 네 악기가 삼도농악과 웃다리 풍물을 숨쉴 틈도 없이 연달아 몰아쳤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연주는 끝났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귀가 먹을 것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사물놀이'라는 신명의 민족음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 예인 김덕수(55).그는 가장 한국적인 가락으로 전 세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킨 글로벌 엔터테이너다.

그가 데뷔 50주년을 맞아 반세기 예인 인생의 여정을 담은 책 '글로벌 광대 김덕수,신명으로 세상을 두드리다'(김영사)를 펴냈다.

이 책에는 남사당의 마지막 후예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유랑길에 오른 뒤 천부적인 재능으로 낙랑악극단을 이끌다가 국악예술학교를 거쳐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서도 국제적인 놀이판을 키운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또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과 해외 무대를 누비고 유엔총회장에서 정명훈과 함께 '사물놀이를 위한 협주곡-마당'을 연주하는 등 '우리 시대 최고의 이단아이자 최고의 국제 광대'로 살아온 이야기가 실감나게 펼쳐진다.

온갖 고생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이지만,그에게도 즐거운 기억은 있다.

아들이 운 좋게 사립 유치원에 '당첨'된 뒤 "우리 아빠는 사장" "우리 아버지는 회장"이라고 으스대는 친구들에게 "야,우리 아빠는 사물놀이 왕회장이셔"라고 대꾸했다는 얘기….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면서 비보이들과 나눈 대화의 한 자락도 예사롭지 않다.

남사당 재주넘기와 풍물의 자반뒤집기를 본 비보이들이 자신들의 행위와 너무나 닮았다며 놀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DNA 안에 이미 전통이 다 들어있는겨."

5∼9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리는 '길-어제,오늘 그리고 내일'은 50년간의 풍물 인생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국악과 서양음악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연희극의 가능성을 보여줄 예정이다.

풍물·살판·소고놀이·민요 등의 전통연희에 이어 비보이 댄스,재즈,힙합 등 서양의 춤과 소리를 한 데 모은 것.사물놀이패 외에 논버벌 퍼포먼스 '도깨비 스톰'의 이경섭,비보이 그룹 드리프터즈 크루,뮤지컬 배우 김사량,래퍼 수파사이즈(김씨의 장남) 등 분야별 '꾼'들이 어우러져 '난장판'을 벌인다.

6년 만에 새 음반 '길'도 냈다.

'길'에는 '덩덕궁''비나이다''육자배기-흥타령' 등 10곡이 실렸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