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는 없으나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거짓을 위하여 더이상 목숨을 바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청둥오리의 손을 놓고 등 뒤에서라도 더욱 너를 껴안기 위하여/ 자맥질을 하면서 딱딱한 강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젖지 않는 물' 중에서)

정호승 시인(57)이 3년 만에 9번째 시집 '포옹'(창비)을 펴냈다.

수록된 66편 중 40여편이 미발표작이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삶에 대한 긍정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다.

그 의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삶의 비극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내'하는 것이다.

그는 죽음,배설 등 우리가 직접 마주하기 힘든 것들을 '뻔뻔하게' 드러낸다.

인생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언젠가 소멸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마저도 시의 당연한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런 고통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일 수도 있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일으켜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세운다 할지라도.'('넘어짐에 대하여' 중에서)

따라서 그가 삶의 고통을 버티는 데 필요한 힘을 사랑에서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모든 시인들이 생명의 본질로서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시 '포옹'에서 그는 서로 껴안은 채 발견된 신석기 시대 두 부부의 사랑을 현대인들의 가벼움과 비교한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포옹' 중에서)

시인은 작품 안에서 사랑에 대한 절실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오히려 시의 첫인상은 냉정하면서도 자조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표현은 사랑에 대한 시인의 갈구를 반어적이고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일 뿐이다.

'질질 나를 끌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나 나는 너와 함께 가지 않는다/ 거듭거듭 말하지만 평생 나는 너의 것이 아니다/ 나는 나 혼자 갈 뿐/ 너는 너 혼자 갈 뿐.'('여행 가방' 중에서)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