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효섭, 연쇄살인범 연기에 시청자 호평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했던 MBC TV 월화극 '히트'의 연쇄살인범 백수정.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후에는 이(齒)를 드러내는 비열한 웃음으로 드라마의 고삐를 죄었다.

이 사람 누굴까.

낯설어 오히려 더욱 섬뜩했던 백수정의 주인공은 TV 나들이가 처음이나 다름없는 연극배우 엄효섭(41).
눈썰미 있는 시청자들은 조재현과 김지수가 출연했던 영화 '로망스'에서 김지수의 남편으로 출연했고 MBC 수목극 '고맙습니다' 초반에 봄이(서신애)의 선생님으로 잠시 얼굴을 비췄던 엄효섭을 알아봤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엄효섭의 얼굴에서 백수정을 떠올린다.

"동네에서 슈퍼마켓이나 세탁소에 가면 '범인 여기 있는데 왜 안 잡아가느냐'고 하세요(웃음). '히트'에 나온 걸 보고 연락 안했던 친구들이 전화해서 '섬뜩하다'고 해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제가 사람들을 위협하는 장면에서 '왜 그러냐'고 꼬집죠."
조명 때문에 얼굴이 뾰족해 보였기 때문일까.

존속 살해로 9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5년간 정신병원에 있다가 다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TV 속 백수정의 표정엔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야비함과 잔인함이 묻어났다.

치아를 드러내며 싱긋 웃는 표정은 백수정의 트레이드 마크. 낯선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연쇄살인범을 연기해내는 엄효섭에게 '악플'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살인마', '죽여버리고 싶다' 이런 반응이 많은데 기분 하나도 안 나빠요.

오히려 그런 '악플'이 고맙죠. 저도 백수정을 연기하지만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나' 하면서 백수정 욕을 하니까요.

이를 드러내는 게 강렬해 보였나요? 그냥 저절로 그런 웃음이 나왔어요, 느낌대로."
백수정이 이해됐을까? 평범한 직업의 캐릭터라면 만나보고 이야기라도 들어볼 수 있지만 연쇄살인범이라니, 얼굴 보기도 힘들다.

21일 새벽 종방을 앞두고 한 폐교에서 진행된 마지막 촬영에서 백수정이 헨델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들으며 어머니와의 옛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찍으면서는 힘이 많이 들었다.

"범죄자 아닌 것 같은 사람도 죄를 짓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누굴 돕기도 하는 것처럼 특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폐교에서 엄마 생각을 하면서 우는 장면을 찍을 때는 참 어렵더라고요.

서글픔이 묻어나와야 하는데 '난 배우가 아닌가보다' 싶은 마음마저 들어서 그 새벽에 소주 마시고 집에 들어갔어요.

"
여전히 진짜 배우의 모습을 놓고 고민하는 엄효섭이지만 연극 무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내공을 쌓았다.

1990년 뮤지컬 '캣츠'로 데뷔하고 나서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고 '로망스'를 찍을 때까지는 꾸준히 한 우물을 팠다.

이제는 연쇄살인범으로 알린 얼굴을 다양하게 보여줄 때. 앞으론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넘나들며 뛰어다닐 생각이지만 아직은 TV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어색하다.

"배우는 장르나 캐릭터 구분 없이 그냥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즐거움도 섬뜩함도 감동도, 모든 것을 줄 수 있어야겠죠. 그래서 연쇄살인범 역할이 들어왔을 때도 기분이 좋았어요.

그래도 TV에 제가 나오는 걸 보면 이상하고 어색해요(웃음)."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na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