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이 영화의 관심거리는 코믹 배우로 알려진 짐 캐리의 연기 변신과 숫자 '23'이다.

이 두 가지의 조합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로 흡수시켜 편안함을 주는 짐 캐리가 음산한 분위기의 스릴러 장르에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이다.

물론 '트루먼쇼' '이터널 선샤인' 등 코믹 장르가 아닌 영화에도 출연한 적 있지만 그의 이미지는 어찌됐든 코미디다.

그런 그가 조엘 슈마허 감독을 만났다.

'오페라의 유령' '배트맨' '폰부스' '8미리' 등을 연출한 슈마허 감독이 짐 캐리를 내세워 서양에서는 음모론의 대표적인 숫자인 23과 결합시켰다.

서양에서 보는 23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여러 책에서 음모론적 논쟁이 펼쳐진다.

살펴볼까.

모스부호를 이용해 발송한 최초의 전문은 성경의 민수기 23장 23절. 체르노빌 원전폭발 사고 새벽 1시23분 발생. 지구의 자전축은 23.5(5=2+3)도 기울어져 있다.

인간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23번째 염색체.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의는 23개.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날은 1912년4월15일(1+9+1+2+4+1+5+=23). 해리 포터가 마법학교를 향해 타고간 기차 번호 5972(5+7+9+2=23). 9ㆍ11테러 발생일은 2001년 9월11일(2+1+9+11=23). 2를 3으로 나누면 0.666…, 악마의 숫자.

음모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23의 비밀을 기본 설정으로 깐 이 영화는 현실감을 덜기 위해 다분히 몽환적 분위기로 관객의 심리까지 어지럽히는 이중효과를 거둔다.

영화 속 현실과 책의 내용을 교차해 보여주며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 후 두 공간을 어느새 일치시켜 관객의 허를 찌른다.

23이란 숫자가 갖고 있는 긴장감이 영화를 옥죄며 관객을 흡입시키지만, 중반 이후 예정된 수순을 밟아가는 형식은 맥풀린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유지시키는 스릴러를 만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
야생동물보호소에서 일하는 월터는 떠돌이 개 때문에 생일날 아내 애거사와의 약속에 늦고 만다.

애거사는 월터를 기다리다 동네 서점에서 빨간색 표지로 유독 눈에 띈 '넘버 23'이란 제목의 책을 산다.

생일선물로 이 책을 받은 월터는 23의 마력에 빠져들고, 자기와 연관된 수치 역시 모두 23이란 걸 깨닫는다.

자기 생일, 집 주소, 아내와 처음 만난 날 등등 모든 숫자가 23과 연관돼 있는 것.
책 속의 주인공 핑거링 형사는 자살을 시도하는 미모의 금발 여성을 만나 23이란 숫자의 법칙에 대해 듣는다.

그 여성은 23이란 숫자가 아버지에 이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말한다.

그 여자를 설득했다고 여겼으나 핑거링의 눈앞에서 투신 자살하는 모습을 본 후 핑거링 역시 23의 법칙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핑거링은 연인 패브리지아가 바람을 피우자 살해하고 그 상대자에게 살인 혐의를 씌운다.

월터는 책을 읽으면서 현실과 책을 혼동하며 자기가 아내를 죽일 것만 같은 환상에 휩싸인다.

애거사는 친구이자 심리학과 교수인 아이작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를 본 월터는 책에서처럼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월터는 원작자를 찾기로 결심한다.

아내와 아들 로빈과 원작자를 찾지만 그는 월터의 눈앞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월터는 점점 더 헤어나오질 못하고, 애거사는 원작자라며 찾은 정신과 교수에게서 결정적 단서를 찾는다.

출연 배우들은 모두 1인2역을 소화했다.

영화 속 현실과 책 속의 인물. 짐 캐리는 월터와 핑거링을, 버지니아 매드슨은 아내이자 연인을, 로건 로먼은 월터와 핑거링의 연인 시절을, 대니 휴스턴은 아이작 교수와 마일즈 피닉스 박사를.

23에 대한 의심과 의문을 잔뜩 부풀려놓고, 막판에 미국식 가족주의와 인간의 성선설로 마무리짓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15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