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아버지, 3집 '검은 행복'에 내레이션
"깜둥이ㆍ양키란 놀림에 많이 울었죠"

윤미래(tㆍ본명 나타샤 리드ㆍ26)의 두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눈 흰자위에 붉은 기운이 감돌더니 한쪽 볼이 눈물로 반짝였다.

"죄송해요. 에이 부끄럽다. " 3집 재킷 속지에 '음악을 포기하고 그냥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이란 글을 보고 "언제였는지" 묻자 아픔이 북받쳤나 보다.

"(소속사 문제 등으로) 4년여 공백기를 보내며 음악을 포기하려 했어요. 사람과의 믿음에 실망했고 제가 인생에서 뭘 원하는지 깨달았죠. 처음엔 스타를 꿈꿨는데 그냥 편해지고 싶었어요. 평범하게 공부해 다른 일을 찾으려 했죠.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결국 또 음악이었어요. "

윤미래는 호된 성장통을 겪은 듯했다.

앳된 얼굴은 여전했지만 표정의 개수가 늘었다.

인터뷰 도중 웃음을 되찾은 건 1970년대 팝스타들 덕택. 마빈 게이, 아레사 프랭클린, 스모키, 샤카 칸….
"옛날 음악에 꽂혀 있어요.

이런 노래엔 가수의 혼이 느껴져 들을수록 좋죠." 뮤지션의 인종ㆍ장르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섭취한 그는 '고전(古典)'에 대한 왕성한 식성을 자랑했다.

"DJ 활동을 하셨던 아버지는 월급만 타면 LP를 사들고 오셨어요. 서너 살 때부터 70년대 음악이 자장가였죠. 좋아하는 LP를 가리키며 틀어달라고 아버지를 쫓아다녔으니까. LP가 3만 장에 육박하자 어머니는 '우린 어디서 자냐, LP를 머리에 이고 살라'며 투정부리셨죠."

윤미래의 아버지 토머스 J. 리드(Thomas.J.Reidㆍ51)는 미군 하사관으로 근무하며 동갑내기 한국인 여성과 결혼, 미국 텍사스로 건너가 예쁜 딸 윤미래를 낳았다.

5년 전 아내와 이혼한 그는 현재 대구 미군부대에서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윤미래의 새 음반 수록곡 '검은 행복'에 영어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굵은 음색의 맛깔스런 내레이션을 들으니 윤미래가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았나 보다.

"아버지가 제 부탁에 '돈 얼마 줄 거냐'고 장난치면서 '이 정도는 한방에 가지'라고 자신하셨어요. 그런데 녹음 부스에서 떠시는 거 있죠? 히히. 8마디 내레이션을 직접 쓰셨는데 할 얘기가 어찌나 많으신지 완전 '필' 받으셨나봐요. 분위기 잡으라고 음악을 틀자 리듬까지 타시는 거 있죠?"

<<'유난히 검었었던 어릴 적 내 살색/사람들은 손가락질 해 Mommy한테/내 Poppy는 흑인 미군/(중략)난 내 얼굴을 씻어내/하얀 비누를 내 눈물에 녹여내/까만 피부를 난 속으로 원망해/(중략)열세 살은 열아홉 난 거짓말을 해야 해/내 얼굴엔 하얀 화장 가면을 써달래/엄마 핏줄은 OK 하지만 아빠는 안돼~.'(검은 행복 中)>>

아버지 덕택일까.

80년대 생답지 않게 윤미래의 음악적 토대는 과거와 맞닿아 있다.

복고 스타일의 새 음반은 솔, R&B, 힙합 등 흑인 음악이란 천 위에 보컬ㆍ래핑의 화려한 수를 놓았다.

"음색에 흑인 특유의 필(Feel)이 있다"고 하자 "반(半) 흑인인 난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며 손을 가리고 '킥킥' 댄다.

칭찬엔 늘 부끄러운 탓이다.

금세 얼굴이 빨개진다.

70년대 솔 풀한 스타일인 타이틀곡 '잊었니'는 요즘 트렌드와 동떨어졌다.

정제된 느낌으로 편하게 소화해 감정이 넘치지 않았다.

'시간은 눈물과 흐르고' '나니까' '후(Who)' 등 발라드 넘버들은 차분한 무채색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뭐니해도 '최고 여성 래퍼, 나타샤'답게 명품 래핑이 돋보인다.

'블랙 다이아몬드' '왓스 업! 미스터 굿 스터프(What'up! MR. Good Stuff)' '김미 김미(Gimme Gimme)'에서 그의 랩은 통통 튀는 탄성을 자랑한다.

이미 윤미래의 랩은 혼성그룹 업타운 시절부터 유명했다.

업타운의 정연준과 만나 음반을 처음 준비할 때가 13살. 당시 기획사는 그의 나이를 19살로,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를 흑인으로 둔갑시켰다.

"대중을 속이는 게 싫었고,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아 당시 일부 언론에 흑인 아버지의 존재를 고백하기도 했죠. 거짓말은 너무 싫었거든요."

군인 아버지 탓에 한국, 미국, 독일을 돌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힘들어 2005년 말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미국인, 한국인, 흑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이 와 답답했죠. 어렸을 때 '깜둥이' '양키 고 홈!' '미스터 몽키~'란 놀림에 많이 울었고 주먹다짐도 자주 했어요. 지금은 대니얼 헤니, 하인스 워드 등 혼혈 스타들이 많지만 그땐 제가 신기한 존재였으니까…."

혼란을 거듭한 끝에 다시 회귀한 곳도 음악이다.

"돈과 상관없이 음악을 사랑해서 시작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직업이 돼버리네요. 엉엉. 돈을 조금 벌면 다른 일도 좀 해보려고요. 돈 구애받지 않고 평생 초심으로 순수하게 음악하고 싶거든요. 요즘엔 부동산업에 관심이 많답니다. 호호."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