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폐인들 인터넷서 팬픽 열풍에 빠져
'다모'에서 출발, 최근 '연인'까지 유행
시청률과 함께 또다른 드라마 인기 척도


"창이와 영이. 내가 만든 이 물방울처럼 예쁘고 소중한 아이들을 아버지께 봬드리지 못한다는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중략) 상택형…. 이름을 떠올리니 가슴이 뻑뻑하게 아파온다."(아이디 '소금눈물'이 작성한 '그후 이야기-강재2' 중)


강재와 미주는 결혼해 창이와 영이라는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둘의 이야기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강재와 미주의 드라마틱한 사랑을 그린 SBS TV 드라마 '연인'은 이미 11일 막을 내렸다.

배우와 제작진이 기분 좋게 '쫑파티'도 하고 서로 '안녕'을 고했다.

그러나 '연인'은 끝나지 않았다.

비록 오프라인에서는 사라졌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는 당분간 '네버 엔딩 스토리'가 될 듯하다.

'연인 폐인'들이 활동했던 인터넷 디시인사이드 내 '연인 갤러리'는 드라마 종영 일주일이 지난 18일 현재에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팬픽'(FAN FICTION의 줄임말. 원작을 바탕으로 팬들이 재창조한 작품) 열기로 말이다.

매체 다변화로 드라마뿐 아니라 지상파TV의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방송가에서는 과거처럼 단순히 시청률 수치로만 프로그램의 인기를 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시청률은 주로 젊은 시청자들이 TV에서 이탈하는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을 겨냥한 트렌디 드라마의 각종 인터넷 게시판들이 주목받고 있다.

시청률에서는 잡히지 않는 시장의 반응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이와 함께 폐인들이 지어내는 팬픽이 UCC 붐을 타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불이 붙은 '연인' 팬픽을 중심으로 드라마 폐인과 팬픽 문화를 살펴봤다.

◇'다모'에서 '연인'까지 뜨거운 팬픽 문화


언젠가부터 온 가족이 보는 일일ㆍ주말 드라마나 사극을 제외하고는 시청률 30~40%의 드라마를 만나기 힘들어졌다.

이는 젊은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한 시청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방송가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TV를 찾아보는 층은 중년층 혹은 노년층뿐"이라는 말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매체를 통해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대이고 변화에 민감한 젊은층이 가장 능동적으로 이와 보조를 맞추고 있기 때문.
지난해 방송된 김옥빈, 지현우 주연의 MBC TV '오버 더 레인보우'는 한 자릿수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다양한 팬픽을 낳았다.

어린 가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의 내용에 걸맞게 10대 시청자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마니아 층이 생겼고, 이들은 드라마 종영 후에도 인터넷에서 개성 만점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외전, 속편, 패러디 등의 형태로 말이다.

'폐인'이라는 말을 세상에 나오게 한 드라마 '다모' 역시 엄청난 팬픽을 자랑한다.

이 역시 시청률에서는 별반 신통치 않았지만 방영 당시 누리꾼 폐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종영 후에는 혀를 내두를 만큼 많은 팬픽이 양산됐다.

극중 황보윤을 지지하는 '윤폐'들과 장성백을 지지하는 '장폐'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팬픽이 만들어졌는데, '여화적 장재희'라는 제목의 외전에서부터 황보윤과 채옥이가 생존해 있다는 가정하에 쓴 소설 등 다양하게 등장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 '파리의 연인' 등에도 따라붙은 팬픽 문화는 현재 '연인'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연인' 폐인들은 강재와 미주의 훗날 이야기를 속속 쏟아내고 있으며 방송된 내용 중에서도 비어 있던 행간을 채워넣으며 '당시 이러이러했을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연인'은 끝났지만 폐인들은 서로의 팬픽을 읽고 답글을 달아주면서 아직도 '연인'을 함께 즐기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아이디 '소금눈물'과 '휘인'의 팬픽은 매번 조회 수 1천 단위 대를 자랑하며 사랑받고 있다.

이 모두 '연인'의 평균 시청률이 10%대 후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현상이다.

◇UCC 붐과 보조 맞춰 폐인들 한층 활성화


드라마의 반응을 방송사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알아보는 것도 이젠 구식이 됐다.

누리꾼들은 시시각각 다양하고 새로운 인터넷 게시판을 찾아 자신들의 둥지를 튼다.

최근에는 UCC 붐을 타고 사진과 영상을 올려야만 게시물이 등록되는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가 각광을 받고 있다.

'연인' 폐인들의 주무대 역시 이곳. 드라마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팬픽들은 실제 드라마의 대본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게 한다.

'연인' 갤러리가 더욱 붐볐던 이유는 배우와 작가의 적극적인 참여도 한 몫했다.

극중 '상택' 역을 맡은 이기영은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촬영장 사진을 종종 올려 폐인들을 열광케했고, 김은숙 작가와 김정은 등이 방문해 남긴 글은 폐인들이 드라마와 더욱 밀착되도록 이끌었다.

폐인들은 드라마 사진을 올릴 때도 '포토샵' 등의 과정을 통해 사진을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있으며, 배경음악 선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때문에 내용과 상관없이 음악만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게시물들도 있다.

과거에는 시청자들이 방송사에서 틀어주는 드라마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들의 감상과 느낌, 의견을 적극적으로 게진하는 시대. '연인' 폐인들은 마지막회를 극장을 빌려 함께 보는 '파워'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작가와 배우들도 참석했다.

바야흐로 적극적인 시청자들이 제작진과 드라마에 영향을 끼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퀴어 멜로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DVD를 준비하면서 팬들이 직접 만든 팬픽 영상을 수록할 예정이다.

◇"소름끼칠 만큼 감동적이고 뿌듯"


SBS 구본근 책임프로듀서는 "'연인' 쫑파티 때 이들 폐인들이 삼단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해온 모습을 보고 놀랐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드라마의 여운을 함께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대단해보였다"며 놀라워했다.

폐인들 못지않게 '연인'의 후유증을 앓느라 지난 일주일 잠을 못 이뤘다는 주연배우 김정은은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한없이 고맙고 감동적"이라며 "폐인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마니아들이다.

내가 출연한 드라마가 어떤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그만큼 깊게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기자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시청자들이 내 연기와 작품을 통해 감정의 움직임을 일으킬 때"라며 "여러 팬픽들 속에서 두루두루 많은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폐인들이 연기하는 사람 이상으로 드라마를 소중하게 얘기하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들은 그냥 재미로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가 남겨준 여운을 못 견디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작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쓴 드라마에서 파생된 각종 창작물을 지켜보는 '연인'의 김은숙 작가의 심정은 어떨까.

"팬픽들을 볼 때는 제가 시청자의 입장이 돼 머리 속으로 영상을 그리며 글을 읽게 돼요.

재미있고 즐겁죠. 저보다 분석력 있는 분들도 많고 제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부분을 설명해놓은 것을 보면서 감탄도 합니다.

다들 글을 무척 잘 쓰셔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폐인들의 활동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팬픽은 돈을 주고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시청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무척 소중합니다.

제작진에게는 너무나 큰 마음의 위로가 됩니다.

그런 것을 고려하면 '연인'의 체감 시청률은 60%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고 기쁠 따름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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