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PiFan 여우주연상ㆍ관객상 수상작
렌탈가족 소재로 강렬한 메시지 전해


"당신은 가족에게 어떤 아버지며, 어머니며, 아들이며, 딸입니까?"

일본 소노 시온(45) 감독은 영화 '노리코의 식탁'에서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살클럽' '기묘한 서커스' 등을 통해 가족 해체가 낳은 비극적 결말을 자살ㆍ살인 등 엽기적인 코드로 풀어내 주목받아 온 소노 감독은 '노리코의 식탁'에서도 여전히 해체된 가족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 당신의 가족은 행복합니까? 혹시 연기된 거짓 행복은 아닌가요?"

소노 감독이 '노리코의 식탁'에서 소재로 삼은 것은 렌탈가족.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17살의 평범한 여고생 노리코(후키이시 가즈에). 자신을 몰라주는 부모와 지루한 학교생활 속에서 유일한 위안은 인터넷 사이트 폐허닷컴에 접속하는 것. '미쓰코'라는 대화명으로 온라인상에서 또래 친구들과 만나 속내를 털어놓는다.

지방신문사 편집장인 가부장적인 아버지 데쓰조(미쓰이시 겐)와 딸들의 고민에 별 관심 없이 취미생활에만 몰두하는 어머니에게 염증을 느낀 노리코는 정전이 된 어느 날 밤 가출해 도쿄로 향한다.

그는 도쿄에서 폐허닷컴의 여왕으로 불리며 또래 아이들에게 추앙받던 구미코(쓰구미)를 만난다.

구미코는 태어나자마자 우에노역의 사물함에 버려졌다.

구미코는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을 증오하며 이상적인 가족을 연기해주는 렌탈가족 사업을 하고 있다.

노리코는 자신의 이름을 미쓰코로 바꾸고 구미코의 렌탈가족 사업에 참여해 이상적인 가족을 원하는 고객에게 기꺼이 가족이 되어 준다.

미쓰코는 이제 더 이상 노리코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상적인 삶을 미쓰코에게 투영하며 노리코임을 거부한다.

노리코의 동생 유카(요시타카 유리코) 또한 노리코의 뒤를 따라 가출한다.

그녀는 폐허닷컴을 통해 언니의 행적을 알아낸 뒤 이후 도쿄로 와 구미코가 운영하는 렌탈가족의 일원이 된다.

유카 또한 유코로 이름을 바꾼다.

이제 자매는 더 이상 자매가 아니다.

딸들이 가출한 뒤 아내가 이를 비관해 목숨을 끊자 노리코의 아버지 데쓰조는 딸들을 찾아 도쿄로 간다.

그는 친구에게 구미코가 운영하는 회사에 렌탈가족 서비스를 의뢰해달라고 부탁하고, 친구는 가족을 연기할 배우로 노리코와 유카를 지목한다.

영화 속 렌탈가족은 노리코와 유카, 구미코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할머니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걱정하며 끊임없이 웃음으로 하루를 채우는 이들은 현실에서 맛보지 못한 가족의 행복을 연기 속에서 경험하며 즐거워한다.

자신을 부정한 채 거짓 행복을 추구하는 것.

소노 감독은 가족 구성원 간에 만연해 있는 이기심에서 가족 해체의 원인을 찾고 있다.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는 것으로 가장의 의무를 다했다고 믿는 아버지나 자신의 속내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가출 등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딸들 역시 이기적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렌탈가족으로 아버지와 다시 만난 유카는 "왜 모두들 사자(주인공) 역할만 하려고 하고 토끼(조연) 역할은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며 울부짖는다.

'노리코의 식탁'은 잔인한 장면을 품고 있지만 '기묘한 서커스'처럼 지나치게 잔인하고 엽기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영화다.

일반 관객이 접근하기에 좀 더 쉬워졌다는 얘기.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지만 굳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노 감독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관람 자체가 곤혹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노리코 역 후키이시 가즈에의 연기가 눈에 띄지만 구미코 역 쓰구미의 연기가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는 PiFan에서 관객상도 함께 받았다.

내달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