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누 리브스 주연 영화 '매트릭스'는 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는 가상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기계의 통제 속에 지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시인 휘민씨(33)는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처음 내놓는 시집 '생일 꽃바구니'(서정시학)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거대한 '매트릭스'로 보는 듯하다.

그는 "기술 발달은 우리에게 편리한 생활을 보장해 주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는 기계와 시스템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며 "나의 시는 언제나 우리를 겉돌게 하는 세계,논리와 합리의 전선들이 과부하를 일으키는,'멀티''콘텍스트'의 그물에 커다란 구멍을,아니 창을 뚫어보고 싶은 지독한 갈망의 소산"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1부 '멀티시대'에서 형광빛으로 표상되는 창백하고 차가운 현대성의 실체를 삶의 불꽃인 생명과 대비시키고 있다.

2부의 시편들은 '라디오 방송국'과 '소리'라는 두 개의 코드를 중심으로 우리를 간섭하고 통제하는 권력의 미세한 그물망을 조준한다.

'0시48분,회사를 나선다/숙직실 유리문에 걸린 심야영화 한 자락/주인공은 지금 도시를 떠나고 있다/혓바늘로 스리를 더듬으며 나도 길을 찾는다/세상과 함께 살기 위해 다섯 시간의 잠을 충전하러…(중략)//늘 똑같다/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다/이제 그림자를 벗고 잠을 청해야겠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게' 중)

그는 "첫 시집을 내게 돼 기쁘지만 한편으론 늦둥이 애를 물가에 내보내는 심정"이라며 "지난 몇 년간의 간단치 않았던 내 삶이 시의 주된 소재였다"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