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일 홋카이도 '철도원' 촬영지 찾아

2집 후속곡 '흰 눈' 뮤직비디오 촬영

눈 덮인 시골 종착역 호로마이의 사토 오토마쓰 역장은 평생을 철도와 함께 한다.

아내 시즈에가 아이를 가졌다며 눈을 뚫고 달려온 곳도, '눈의 아이'라 이름 붙인 딸 유키코의 시신을 안고 온 곳도, 딸의 영혼이 찾은 곳도 호로마이 역이다.

다카구라 겐의 열연으로 감동을 준 영화 '철도원'. 이 영화는 일본 홋카이도 후라노(富良野)의 이쿠토라 역에서 촬영됐다.

무인역으로 지금도 사용되는 이곳에 7일 오전 가수 이루(23)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2집 타이틀곡 '까만 안경'을 히트시킨 이루는 이달 말부터 선보일 후속곡 '흰 눈'의 뮤직비디오 촬영차 이 역에서 오전 8시49분발 기차에 올라탔다.

지금은 헤어진 연인(신인 연기자 이현지)과 기차에서 행복했던 한때인 회상 장면을 촬영한다.

"한 정거장 만에 찍을 건데 마음에 안 들면 다음 역, 그 다음 역까지 간다.

" 박영근 뮤직비디오 감독의 말에 기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강고쿠(韓國) 가슈(歌手)?"라고 수근대며 얼굴 가득 호기심을 내비친다.

"자~ 이루와 현지가 마주본다.

서로 가까이 다가가며 키스한다". 일순간 얼굴을 마주보던 두 사람은 '깔깔' 웃음보를 터뜨린다.

장남철 촬영감독은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게 연기하란 말이야!"라고 호통을 친다.

결국 이쿠토라→가나야마→시모 가나야마→야마베 역을 거친 끝에 'OK' 사인이 떨어진다.

그 사이 차창 밖으론 백설기 가루 같은 눈이 하얀 세상에 흩날린다.

윤동주 시 '눈' 가운데 '눈이 소오복이 왔네/지붕이랑/길이랑 밭이랑/추워한다고/덮어주는 이불인가봐/그러기에/추운 겨울에만 나리지'란 구절이 떠오른다.

멀리 보이는 웅장한 다이세쓰 산은 눈이 선사한 명암으로 웅장한 자태를 과시한다.

소담스레 쌓이는 눈발을 뚫고 이동한 곳은 가나야마 호. 호숫가에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은 발자국 하나 없다.

그림 같은 풍광에 30명의 스태프는 일제히 "예술이다, 우~와 죽인다"란 감탄사를 터뜨린다.

이루와 이현지가 낚시를 하며 송어를 낚는 장면. 플라잉 낚시를 처음 해보는 두 사람은 스태프의 조언에 예습을 한다.

박 감독의 '레디~ 액션!' 소리와 함께 이루가 힘차게 낚싯대를 휘두르지만 영 어설프다.

"이루야, 물고기가 잡혔으면 세게 끌어당겨야지." "현지야, 고기 잡혔는데 뭐하니. 좋아라 펄쩍펄쩍 뛰어야지." 스태프의 고함에 한바탕 웃음소리가 찬 바람을 가른다.

수십m 소나무 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도 놀란 듯 후두둑 떨어진다.

이 장면에 쓰인 소품은 70㎝ 송어와 썰매개 시베리안허스키. 도통 말을 안 듣던 시베리안허스키는 카메라를 들이대자 나란히 앉은 이루와 이현지 사이에서 벌러덩 드러눕는다.

이현지는 "내 연기보다 네 연기가 낫다"며 개를 쓰다듬어 또 한바탕 웃음. 이현지가 이루의 볼에 살포시 키스한다.

이어 6~7명의 스태프가 낑낑 대며 눈밭에 밤색 그랜드 피아노를 나른다.

이루가 순백색의 대지에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를 치며 '흰 눈'을 립싱크하는 장면이다.

동행한 태진아는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아들이 감기라도 걸릴세라 배에 핫팩을 붙여준다.

이루는 "저 안 추워요.

아버지 붙이세요"라며 반대로 걱정을 한다.

'흰 눈이 내리던 어느 날/그 고운 입술로 날 사랑한다고/안녕이란 말을 하고/그대가 내 곁을 떠나갔죠~". 카메라 앵글 속 풍광과 노래가 똑 떨어진다.

"오케이, 컷" 소리에 이루가 "아~ 손가락 꽁꽁 얼 것 같애"라며 파리해진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분다.

날씨는 정말 웃음 소리마저 얼릴 정도로 매섭다.

지붕 처마, 나뭇가지까지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오전부터 밤까지 강추위를 이기기 위한 이루와 스태프의 고생은 눈물겹다.

핫팩을 넣은 장화, 귀를 덮는 털모자, 톡톡한 장갑과 내복은 필수.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떨어져 시간을 아끼려 점심도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때웠다.

"촬영장 분위기가 즐거워 추위도 잊고 찍는다"는 박 감독은 "연인들이 헤어졌을 때 가장 머리 속에 남는 임팩트 순간은 키스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들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포착하는 게 테마다.

기대해도 좋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날 후라노 시립도서관, 후라노 거리 자동판매기 앞 촬영을 마치자 밤 10시가 넘었다.

"밥 먹으러 가자"는 박 감독의 외침에 스태프의 환호성이 터져나와 적막한 거리가 잠시 떠들썩해졌다.

8일까지 '흰 눈' 뮤직비디오 촬영은 이어진다.

(후라노<일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