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기 감독-고소영 주연 시너지 효과 못 거둬

올 여름 공포영화 중 최대 화제작인 '아파트'(제작 토일렛픽쳐스ㆍ영화세상)가 다소 맥빠진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위' '폰' '분신사바' 등을 통해 한국 공포영화가 여름 시즌용 장르로 자리잡게 하는 데 큰 역할을 차지했던 안병기 감독이 4년 만에 연기에 복귀하는 고소영과 함께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더욱이 원작이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모았던 강풀의 동명 만화였던 까닭에 관심은 더욱 커졌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결과적으로 형식도, 내용도 모두 기대만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시사회가 끝나고 난 뒤 안 감독 스스로 "4편째 하다보니 어떤 공포 상황이든 한번씩은 해봤던 게 현장에서 연출됐다.

새로운 공포를 하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적인 면에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원작이 갖고 있는 캐릭터나 에피소드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많은 상황을 넣다보니 이해가 안되는 현상이 야기된 것 같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에피소드 중심의 원작에서 벗어나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듯하다.

공포영화는 귀신이나 혹은 범인이 얼마나 잔혹스러운가보다는 무서운 상황이 관객에게 이해됐을 때 더 공포감을 전달한다.

공포 영화의 묘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숨겨진 감정을 촘촘히 포착해 개연성 있는 드라마로 만들어낼 때 더 진하게 나타난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을 안 감독이 지향점을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한 느낌을 준다.

현대인의 생활터전인 아파트를 배경으로 공간의 공포감을 포착한 것은 소재의 확대이긴 하지만 반드시 새로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장 아쉬운 점은 영화의 핵심이 될 주인공의 캐릭터가 살아나지 못한 것.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는 세진(고소영 분)이 겪는 내면의 갈등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극을 이끌고가기에 버겁다는 인상이다.

살해되는 이들의 과오는 명백히 드러나지만 그 과오를 저지르게 된 이유가 분명치 않은 것도 난제. 세진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양성식(강성진)의 대사는 겉돌며 생뚱맞다.

디스플레이 디자이너 세진은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지하철 역에서 한 여인의 자살을 목격한다.

슬픈 얼굴로 "외롭지 않나요?"하고 물었던 그녀의 죽음 이후 세진은 급격히 무너진다.

자살 사건을 잊기 위해 애쓰던 세진은 다리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이웃 유연(장희진)을 만난다.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장애마저 안고 있지만 유연은 이웃 주민이 많이 도와준다며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

어느날 아파트에서 자살 사건이 벌어진다.

우연히 세진이 본 시계는 9시56분을 가리켰다.

또 한번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는데 지난번처럼 9시56분 아파트 불이 깜빡이다 꺼진 집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세진은 이를 양성식에게 말해주지만 그는 비웃을 뿐이다.

쌍안경을 통해 유연의 집을 들여다본 세진은 심상찮은 장면을 목격한다.

이웃 주민이 가차없이 유연의 뺨을 때리는 등 학대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잔인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야 양성식은 세진의 말을 믿으려 한다.

경찰은 자살자와 살해자의 몸에서 모두 똑같은 아파트 열쇠가 발견된 것에 주목한다.

현대인의 가장 일반적인 집의 형태가 된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대문을 마주보고서도 이웃의 얼굴도 모르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가장 친숙한 사람이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가 돼가는 살벌한 이미지가 겹쳐진다.

고소영의 연기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몸의 절반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명암을 표현해낸 장희진에게 눈길이 간다.

7월6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