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은 영화 '가족의 탄생' 시사회장에서 굉장히 쑥스러워했다.

그럴 수밖에. 20년 연상의 동거녀 고두심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누나에게 소개하는 장면과 닭살 돋는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니 말이다.

18일 개봉한 영화를 보면서 그의 낯선 모습에 박장대소하는 관객이 대부분이다.

드라마 '늑대'가 에릭의 부상으로 느닷없이 제작 중단되는 바람에 모처럼 대중 앞에 서게 된 엄태웅은 "영화 '가족의 탄생'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며 "그것만으로도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소개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참 묘한 영화도 다 있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드라마 '부활'을 찍고 있을 당시여서 드라마가 끝나면 쉴 계획을 해 거절하기 위해 김태용 감독을 만났다.

정중히 거절하려고 만난 자리는 "태웅 씨를 보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하는 감독에게 출연을 승낙하는 자리가 됐다.

"제가 형철 역을 연기하면서 원래 시나리오와는 캐릭터가 꽤 달라졌어요.

거짓말을 능글맞게 하다가 되레 버럭 화내는 모습들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 강했는데 제가 하니까 착해 보인다네요."

맞다.

엄태웅이 연기한 형철은 참 뻔뻔스러운데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살가움이 있다.

"감독님도 제 연기를 보시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연기해도 괜찮네요'라며 수긍해주셨어요."

김 감독은 "봉태규와 공효진은 내가 생각한 대로 철저히 계산된 연기를 보이는데, 엄태웅과 정유미는 이상하게 엇박자가 나는 데도 묘하게 들어맞는다"고 말해주며 엄태웅의 긴장을 풀어줬다.

고두심ㆍ문소리ㆍ봉태규ㆍ공효진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느꼈다.

사실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부딪치는 장면이 봉태규의 경우 딱 한 차례, 공효진과는 아예 없었지만 촬영이 없는 날도 서로 촬영장을 방문해 친해졌다.

"고두심 선배 연기야 말할 것도 없죠. 문소리 씨는 저와 동갑인데 술 마실 때는 친구 같고, 촬영장에서는 진짜 누나 같았어요.

태규는 제게 놀라움을 안겨줬어요.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연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배워야 할 게 많아요."

고두심과의 베드신은 압권. 야한 상상이 들어야 하는데 두 사람의 신음 소리가 관객에게 키득거리는 웃음을 준다.

엄정화는 "엄마가 시사회 때 태웅이 신음 소리를 듣고 '아이고, 저게 뭔 일이야'라며 당황해하셨다.

바로 앞줄에 고두심 선배님이 앉아 계셔서 뜨끔했다"는 말을 웃으며 전해주기도 했다.

"태규와 제가 매일 촬영장에 가면 '우린 개털이야. 여자들이 다 해먹어'라고 툴툴거릴 정도로 여자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도 말했다.

요즘 엄정화-엄태웅 남매는 기분 좋지만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족의 탄생'이 18일 개봉한 데 이어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25일 개봉하기 때문에 주연배우로서 느끼는 당연한 긴장감이다.

"영화가 다르니까 별 걱정하지 않는다"면서 "두 영화 모두 볼 만한 영화라는 자부심이 있으니 관객이 모두 봐주셨음 좋겠다"는 바람을 솔직히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