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ㆍ경기의 중요 문화유산 두 건이 잇따라 방화에 노출됨으로써 문화재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해 4월 강원도의 대규모 산불로 낙산사와 낙산사 동종이 전소한 이후, 목조문화재의 화재 방지 대책에 대한 문화재청ㆍ소방방재청의 합동점검 등이 대대적으로 진행돼 온 가운데 최근 불과 5일 사이에 중요 목조문화재 두 건에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특별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화성 서장대 2층 소실.. 창경궁 문정전 방화 국보급 문화재로 번질 뻔

지난달 26일, 서울 창경궁 문정전에서 60대 후반의 최모 씨가 신문지와 부탄가스를 이용해 불을 질러 400여만 원의 재산 피해를 냈고, 1일 새벽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 城. 사적 제3호)의 서장대((西將臺)에서 방화사건이 발생, 누각 2층이 모두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창경궁 문정전의 경우 왼쪽 문이 타고, 천장이 그을리는 피해에 그쳤지만, 만에 하나 건조한 봄 날씨를 타고 목조건물 문정전에 불길이 번졌으면 문정전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국보 226호 명정전 등 창경궁 내의 국보급 유적들이 한꺼번에 화마에 훼손될 뻔한 순간이었다.


1일 수원 화성 서장대의 화재 피해는 훨씬 크다.

5월의 첫날이자 노동절 휴일이기도 한 이날 오전 1시35분께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정상의 화성 서장대 누각 2층에서 안모(24. 무직) 씨가 자신의 속옷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바닥에 던졌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목조 누각 2층(19㎡)을 모두 태워버렸다.

소방차 10대와 소방관 43명이 진화작업을 벌여 20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누각 소실을 막지 못했다.

목조 건물인데다 화성의 문화유적 중에 관람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인 이곳 서장대에는 그러나 흔한 소화전 하나 설치돼지 않았다.

화성이 24시간 개방되는데도 불구하고 화성사업소는 문화재 훼손에 대비한 야간 순찰도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돼 문화재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써 수원 화성을 관리 책임 하는 수원시와 문화재 관리의 주무 부처인 문화재청 모두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담당 부서인 문화재청 사적과 등이 현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수원 화성 서장대는 1996년에도 큰불이 나서 복원한 전력이 있는 문화재다.

이번 방화와 화재의 진압과정에서 1층 기와도 훼손, 복원 비용에만 10억여 원 이상이 들 것으로 화성사업소 측은 추정하고 있다.

◇ 두 사고 모두 '방화'

두 문화재의 화재 모두 '방화'로 일어났다.

창경궁 문정전은 부탄가스통을 가지고 들어간 용의자에 의해 불이 붙었고, 화재가 발생하자 현장에 있던 관람객이 진화에 나서 불길이 잡혔다.

화성 서장대의 경우 화성사업소 측이 야간 순찰을 하지 않아 '세계문화유산'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장대는 조선 후기 임금 정조가 직접 군사를 지휘했던 곳이라, 평일 2만여 명, 주말 5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화성유적 순례 최고의 인기 코스로 꼽힌다.

화성사업소는 시설과 24명, 관리과 15명 등이 근무하지만 일과시간(오전 9시-오후 6시) 이후에는 근무자들이 사무실에서 당직만 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 낙산사 화재 1년, 화재방지대책 마련 아직...

지난해 4월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가 산불로 모두 타고, 그 과정에서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린 이후 목조문화재에 방화 방재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러나 양양 산불 이후 1년이 넘은 시점까지도 제대로 된 목조문화재 화재방지책이 나오고 있지 않은 점이 큰 문제다.

양양 산불 이후 문화재청은 당시 비등한 여론에 밀려 부랴부랴 목조문화재 화재 방지시설 점검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으나, 현재까지 방재 시설의 현황 파악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는 등 목조문화재의 화재피해 예방 작업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조계종은 일본의 문화재 화재방재 시스템 견학 등을 거쳐 전국의 사찰 방재현황 보고서를 1달 뒤 펴낼 계획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전국 목조문화재 방재시설의 현황 조사예산 1억 원이 국회에서 이제 통과해 올 연말께나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의 결과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방재시설 조사 과정에서 관련 정부 부처인 문화재청과 산림청ㆍ소방방재청 간의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형태를 갖춘 방재 시스템의 구상이 나오려면 '아직 좀 기다려야 한다.

'라는 것이 문화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방지책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5일 사이에 벌써 두 건의 문화재에 화재가 일어나는 등 건조한 기후를 타고 목조문화재가 화재 위험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
문화재 중 목조건조물의 비중이 큰 일본의 경우에는 상당 부분 첨단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화재에 대비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시설이 설치된 경우가 매우 드물다.

소화전이 있는 데도 작동하지 않거나 물탱크에 물이 없는 등 방재 시설이 매우 불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문화연대의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은 "전국의 지자체나 조계종에 내맡기는 식의 방재시설 현황 조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문화재청이 대대적으로 나서서 직접 챙겨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목조문화재가 집중된 고궁이나 수원 화성의 경우 소형소방차와 소방대를 상시 운영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