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크래쉬'가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도 공개됐다.

시상식 당시 강력한 작품상 후보였던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치고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줬을 때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던 것도 사실.

그러나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낸 '크래쉬'는 충격 그 자체였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폴 해기스는 서로 다른 여덟 커플을 통해 인종과 계급에 대한 편견과 갈등을 유려하게 영화에 녹여냈다.

'멜팅 팟(melting pot)'이라는 미국을 배경으로 함께 섞여 살지만 좀처럼 융합할 수 없는 소립자 같은 다양한 인종들은 서로를 알지 못해 의심하고 할퀴고 '충돌(crash)'한다.

정치적 야망이 큰 지방검사 릭(브렌든 프레이저)은 아내 진(샌드라 불럭)과 식사를 하고 나오던 중 흑인 청년 두 명에게 차를 강탈당한다.

'흑인=범죄자'라는 편견은 진을 떨게 했고 흑인 청년 앤서니와 피터는 편견에 대해 보복이라도 하듯이 예정에도 없던 차량 강탈사건을 일으킨다.

사건이 일어나자 백인 경찰 라이언(맷 딜런)은 흑인 방송국 PD 캐머런(테렌스 하워드)과 아내 크리스틴(탠디 뉴턴)이 타고 가던 차량이 강탈 차량과 같은 차종이라는 이유로 수색하게 된다.

수색 과정에서 라이언은 크리스틴의 몸을 성추행하듯 만진다.

그렇지만 남편 캐머런은 이 사건이 흑인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자신에게 위협이 될까 두려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

라이언의 인종차별적인 행동에 분노를 느낀 라이언의 순찰 파트너 핸슨(라이언 필립)은 "인종차별주의자와 함께 일할 수 없다"면서 파트너 교체를 요청하지만 거부당하고 결국 파트너 없이 한시적으로 혼자 순찰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 또한 편견에 사로잡혀 흑인 청년을 우발적으로 살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흑인 형사 그레이엄(돈 치돌)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동생의 시체를 본다.

백인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를 선택한 그는 어머니로부터 "동생을 죽인 살인자는 너"라는 비난을 듣는다.

영화는 서로에게 이방인(stranger)으로 살아가는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 한국인 등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극중 "LA에서는 아무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아. 모두 금속과 유리 안에 갇혀 있지"라는 그레이엄의 대사는 미국 인종차별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느낌이 그리워서, 서로를 느끼려고 그렇게 서로 충돌하는 것"이라는 그의 또 다른 대사는 인종 문제의 중심에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이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크래쉬'의 매력은 단순한 갈등만을 부각시킨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 숨쉬는 화해와 이해에 대한 갈망을 함께 다뤘다는 점이다.

크리스틴을 모욕했던 라이언은 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하고, 차량 강탈 사건 후 멕시코계 열쇠 수리공조차 믿지 못해 열쇠를 바꾸는가 하면 히스패닉계 가정부도 신임하지 않았던 진이 가정부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인종 간의 갈등에 화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폴 해기스는 편견이라는 장벽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막았을 뿐이지 인종은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샌드라 불럭의 영화 출연료에도 못미치는 총 제작비 650만 달러(약 63억원)로 제작된 저예산 영화지만 샌드라 불럭을 비롯, '미이라'의 브렌든 프레이저, '미션 임파서블2'의 탠디 뉴턴 등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거의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영화다.

4월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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