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미국 주재원 두 명이 쓴 '더 라이트 네이션'(존 미클레스웨이트 외 지음,박진 옮김,물푸레)은 미국의 보수화 현상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영국인 저자들은 미국인들 자신도 잘 모르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추세를 파악해서 왜 미국은 유럽과 다른 길을 가고 있나를 경쾌한 필치로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사회와 정치의 보수화를 알게 해주는 책이지 결코 보수주의 관점에서 현안을 분석한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미국 사회의 보수화는 적어도 수십 년 동안 진행돼 온 것이며,미국은 종교적 전통,자본주의,넓은 국토 때문에 사회주의가 성공할 수 없는 나라라고 본다. 책은 부시 가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윌리엄 버클리가 시작한 보수주의 평론지 '내셔널 리뷰'와 미국기업연구소 같은 싱크탱크의 성장,골드워터의 1964년 대선 실패와 풀뿌리 공화당 운동의 탄생,보수주의를 배신한 닉슨 대통령,레이건의 백악관 입성 등 보수주의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고 있다. 1988년에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됐을 때 보수세력은 그들이 미국의 주류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시는 세금을 인상하는 등 자신을 지지해준 보수세력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보수진영은 분열됐고 그 결과 1992년 대선에서 부시는 민주당의 클린턴에게 패배했다. 저자들의 표현대로 미국은 여전히 50 대 50으로 두 동강난 나라였다. 클린턴은 매력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복지제도를 개선하고 연방정부의 몸집을 줄이는 등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개혁조치를 취했다.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남부에선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민주당의 아성이던 남부가 공화당 지지로 돌아선 것이다. 남부에선 복음주의 개신교가 세를 불려가고 있었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승리한 것은 이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오늘날 미국에선 자기 자신을 보수라고 표명하는 사람이 진보라고 표명하는 사람의 두 배나 된다. 9·11로 촉발된 안보위기는 보수파를 단결시켰지만 진보파는 오히려 분열하고 말았다. 2004년에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자 유럽인들은 경악했다. 유럽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보수화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 유럽인들이 왜 미국을 잘 몰랐을까? 저자들은 유럽인들이 단지 민주당 세력권인 서부 해안지역과 동북부만을 보고 그것을 미국 전체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미국의 보수화와 이로 인한 유럽과의 마찰은 개도국들에도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에 최근의 미국 정치사회 변화를 다룬 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책이 번역 출판돼 나온 것은 다행스럽지만 성급한 번역 작업 탓인지 많은 오류가 눈에 띈다.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을 '홀리요크 산'으로 번역했고 부시 1기 정부에서 국방차관을 지낸 폴 월포위츠는 국방장관을 지낸 것으로 표기하는 등 오류가 많다. 저자들의 '위트'는 번역을 거치는 과정에서 '진담'으로 둔갑해서 본의 아니게 보수주의자들이 나쁜 사람들로 묘사된 곳도 많다. 540쪽,2만원. 이상돈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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