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맹위를 떨치던 한국영화의 흥행 돌풍이 다소 주춤한 틈을 타 외화들이 극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부분 규모가 작은 영화들로 개봉 시기를 저울질하다 세상에 나오는 작품들이다. 그러다보니 이렇다하게 화제를 모을 요소는 별로 없다. 그러나 덕분에 극장가에는 '다양성'의 물결이 춤을 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전쟁을 치를 겨울방학 시즌을 피해 개봉하는 이들 영화의 면면은 자세히 보면 꽤나 흥미롭다. 알고 보면 유명 배우들도 아주 많이 등장한다. 딱히 예매할 필요도 없을 듯하니 느긋한 마음으로 극장에 가 이들 영화에 한 표씩 던져주는 것도 저물어가는 가을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이런 영화들도 있다. ◇아시아 영화 3색 '영화소년 샤오핑'은 중국판 '시네마 천국'이다. 이에 앞서 선보인 일본 영화 '라스트 씬'과 함께 그들 나라의 영화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 공산정권 아래의 제약된 현실과 가난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야외 극장을 통해 꿈을 키우고 위안을 받던 60-70년대 중국인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냈다. '도쿄타워'는 스물한 살의 청년 도루와 마흔한 살 시후미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 '냉정과 열정 사이'의 에쿠니 가오리의 원작을 바탕으로 앳된 남성이 사회적 관습을 뛰어넘는 모습을 따라갔다. '실락원'의 구로키 히토미가 중년의 청초한 여성으로 변신했다. '천국의 아이들2'는 짐작하듯 '천국의 아이들'의 히트에 기댄 기획 영화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은 전편과 감독이 다르다는 것. 가난과 꼬인 상황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이란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은 여전하다. ◇숨어 있는 스타들을 찾아라 비수기라지만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은 총출동한 느낌이다. 우선 '이터널 선샤인'에는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엘리야 우드 등이 줄줄이 출연한다. 천재작가 찰리 카우프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애절한 멜로와 결합한 영화. 사랑하던 이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우고 싶은 사람은 모여라. '엘리자베스 타운'은 올랜도 블룸과 커스틴 던스트가 끌어나간다. 이 영화로 열애설까지 낳은 두 사람은 청춘남녀의 솔직한 사랑을 풀어나간다. 쓰디쓴 좌절을 맛본 남자가 사랑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브로큰 플라워'는 빌 머레이 표의 여유와 깊이가 느껴지는 영화. 바람둥이 전력이 있는 이 남자가 자신을 스쳐간 여자들을 찾아가며 옛 사랑을 되돌아본다. 샤론 스톤, 줄리 델피, 제시카 랭 등 쟁쟁한 배우들이 그의 파트너로 등장한다. '저스트 라이크 헤븐'에서는 리즈 위더스푼과 마크 러팔로가 사랑을 엮는다.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의 영혼이 자신의 집으로 이사 온 독신 남자와 서로 집을 뺏기지 않기 위해 옥신각신하다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 또 아담 샌들러ㆍ크리스 록 주연의 '롱기스트 야드'는 1974년작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왕년의 풋볼 선수들이 교도소에서 소장의 요구에 따라 경기를 펼치는 이야기다. ◇용 꼬리 대신 닭의 머리를 노린다 앞선 작품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좋은 조건에서 개봉하는 작품들도 있다. 자신들보다 덩치 큰 상대를 피하는 대신 닭의 머리를 노리는 작품들이다. 조디 포스터의 '플라이트 플랜', 니컬러스 케이지의 '로드 오브 워', 맷 딜런의 '그림 형제', 제시카 알바의 '블루 스톰'은 저마다 슈퍼 스타를 한명씩 내세운 데다 몸집도 비교적 커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또 각각 스릴러, 액션, 판타지 어드벤처, 해양 어드벤처라는 상업적 장르다. ◇그리스와 러시아의 이색 영화 그리스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는 음식과 향신료를 소재로 인생의 참된 가치를 찾아나서는 영화다. 영화 자체가 에피타이저, 메인 디쉬, 디저트(Dessert)로 나뉘어 전개되며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이스탄불의 이국적 화려함이 펼쳐진다. '나이트 워치'는 티무어 베크맘베토브 감독의 러시아 블록버스터로 올 부천영화제 개막식을 장식했다. 중세 시대 빛과 어둠의 전사들은 치열한 싸움 끝에 휴전 협정을 맺는다. 그리고 각각 나이트 워치와 데이 워치라는 감시자를 두게 되고 수 세기 동안 인간 세계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2004년 균형은 깨진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