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인 해럴드 핀터는 런던의 동부 끝에 있는 해크니에서 유대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크니 다운스 문법학교를 다닐 때 연극에서 주연을 곧잘 맡았던 그는 이후 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해 본격적인 연극수업을 받았다.


그곳에서 핀터는 '데이비드 배런'이라는 예명으로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957년 핀터는 브리스톨대 학생들과 함께 만든 '방'(The Room)으로 정식 극작가로 데뷔한다.


같은 해 내놓은 '생일파티'(The Birthday Party)는 연극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흥행에서는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1959년 발표한 '관리인'(The Caretaker)이 크게 히트하면서 세계적인 극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핀터의 작품은 동료 극작가인 새뮤얼 베케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실제로 수십년간 우정을 나눠오고 있는 절친한 친구 사이기도 하다.


핀터는 1973년 영국 국립극장의 조감독을 맡으며 연출쪽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라디오 대본이나 시나리오 등을 쓰면서 영화·방송쪽으로도 활동영역을 넓혀나간다.


작품속에 뚜렷한 정치적인 색깔을 내면서 극작가보다는 인권운동가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인권침해나 정치적인 탄압의 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지 등 영국의 유력 일간지 등에도 이와 관련한 기고문을 활발하게 게재했다.


1985년 핀터는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와 함께 터키를 방문,많은 정치적 희생자들을 만난다.


전기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사례를 언급하다 그는 밀러와 함께 터키에서 강제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산골 사투리'(Mountain Language·1988)는 쿠르드족 학살 등 당시 터키를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핀터는 영국의 현대 극작가 중 국내에 가장 많이 소개된 작가로 꼽힌다.


1970년대 초 '생일파티'가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최근에는 정경숙 인천가톨릭대 부교수가 2002년 '제1회 해럴드 핀터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지난해,올해에 이르기까지 여러 극단과 함께 핀터와 관련된 세 번의 페스티벌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동시대 극작가들과 판이하게 구분돼 흔히 '핀터양식'(Pinteresque)이라고 불린다.


'핀터양식'은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극적 애매모호성'에서 비롯된다.


이는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복합적 스타일 및 현실과 환상세계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이중적 구조를 의미한다.


핀터극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극적 애매모호성'은 그의 작품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관객이나 비평가들에게는 큰 매력이지만 동시에 난해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