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은 성공했고 김정은은 실패했다. 적어도 올 가을 TV 드라마에서는 두 배우가 각기 판이한 결과를 낳았다. '제2의 파리의 연인'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6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정준호를 파트너로 내세워 영광을 재현하려 했던 김정은의 SBS TV 수목극 '루루공주'는 시청률 10% 초반대에서 헤매고 있다. 시청자들의 기대로 극 초반에는 20%를 훌쩍 넘긴 시청률로 시작했으니 갈수록 떨어지는 시청률은 여간 민망하지 않다. 최진실이 억척 주부로 나선 KBS 2TV '장밋빛 인생' 은 순탄한 출발과 함께 20% 중반대의 시청률을 보이며 이 시간대 드라마 1위로 치고 올랐다. 이혼이라는 사생활 문제와 드라마 시작전 MBC와의 전속 문제 등으로 갈등을 일으켰던 최진실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떨쳐버릴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아무리 '드라마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말하지만, 기획 단계에서 '루루공주'의 우위를 예상하는 방송 관계자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영 딴판으로 나왔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캐릭터'와 '드라마 접근법'에서 찾고 있다. '장밋빛 인생'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을 맡은 김종창 PD는 스스로 "이 드라마는 지극히 통속적이고 일상적인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아침 드라마나 '부부클리닉'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재의 신선함은 없기에 깊이에 파고들 것이다. 불륜 코드의 반복 재생산이 아니라 부부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해보고 싶다"고 마음속 의지를 드러냈다. '장밋빛 인생'의 캐릭터는 생생히 살아있다. 다양한 형태의 '불륜'이라는 외피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자신만의 고통스러운 삶을 짬짬이 행복으로 느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핵심인물은 물론 최진실이 연기하는 맹순이. 그는 철저히 평범한 30~40대 주부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이웃집 친구같은, 그래서 처해있는 상황이 시청자들에게 공감가는 인물인 것. 이에 비해 '루루공주'의 고희수는 도대체 어디서 만날 수 있는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다. 어렸을 때 들고 있었던 인형을 어른이 된 후에도 들고 있는, 정신적 성숙이 멈춰있는 재벌가 손녀에서 캐릭터가 시작된다. 극 초반 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신용카드를 내는 장면은 얼마나 이 캐릭터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극명히 보여준다.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극적 장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의도한 상업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캐릭터를 만들어놓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희수를 연기하는 김정은의 잘못이 아닌데도 김정은은 '파리의 연인'에서 받았던 찬사를 순식간에 잃고 갑자기 '연기가 늘 똑같은 배우'로 지적받고 있다. 6년만에 출연한 정준호 역시 마음속으로 후회를 하고 있을 지 모른다. 공동 제작사의 한 관계자조차도 "도대체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루루공주'의 실패는 많은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에게 역으로 안도감을 주고 있다. 결코 드라마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한류 바람을 타고 그저 경제적 가치를 지닌 고부가 상품으로 인식해 스타 몇 명과 화제성만 있으면 시청자들이 찾아볼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0%대의 시청률에서 시작해 10% 초반대의 시청률로 내려앉은 것은 시청자들이 결코 단순하게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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