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79)가 자신의 문학적 뿌리는 작고한 문학인 김동리(1913~1995)라고 밝혔다. 박씨는 최근 출간된 '김동리 서거 10주기 추모문집-영원으로 가는 나귀'(계간문예)에서 "선생님은 나를,내 문학을 세상에 내보내 주신 어버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 문집에 김동리씨의 추천으로 등단했던 사연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셋방살이를 하며 상업은행 본점에 다니던 시절 김씨의 돈암동 본가에 찾아가 두세 편의 시를 보여줬을 때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은 게 첫 인연. 박씨가 김씨의 집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집에 세들어 살던 친구가 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후 박씨는 모윤숙씨 소유 빌딩의 지하에 있던 '문예싸롱'이라는 다방에서 "시보다 소설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김씨의 권유를 받고 '불안시대'라는 단편을 써서 갖다줬다고 한다. 은행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조그마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던 박씨는 그해 창간된 '현대문학' 8월호에 '불안시대'가 '계산'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실린 것을 뒤늦게 알았다. 게다가 원래 이름이 아닌 박경리라는 필명으로 실려 있어 자신의 작품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어 '흑흑백백'으로 추천 완료돼 박씨는 문단에 정식 등단했다. 이 모든 것이 김동리씨의 손에서 이뤄진 것이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