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대문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미공개 서간문집이 사거 200주년을 맞아 공개됐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희병(朴熙秉) 교수는 서울대박물관에 소장 중인 '연암선생서간첩'(燕巖先生書簡帖)을 역주본 형태의 단행본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사계절)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 이와는 별도로 이 서간집을 거의 같은 시기에 입수한 한양대 국문학과 정민 교수와 고서전문가 박철상 씨도 이에 대한 검토결과와 문헌해제 외에 원문 전부에 대한 역주를 완성했다. 그 성과는 이달에 발간될 학술잡지 '대동한문학'에 발표된다. 그의 문집 '연암집'(燕巖集)에도 누락된 이 서간집은 연암의 고손인 박기양(朴綺陽.1876-1941)이 소장했으나 박영철(朴榮喆.1879-1939)이 이를 넘겨받아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이 연암선생서간첩에 수록된 서간(편지)들은 작성 시점이 연암이 안의현감으로 60세가 되던 1796년(정조 20) 정월 27일부터 면천군수로 있던 이듬해 8월23일까지 걸친 것들로 모두 32통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이 중 2통은 이 서간집을 소장했던 박기양과 연암의 손자 박규수의 것으로 밝혀졌다. 놀라운 점은 연암의 개인 일상사와 관련되는 편지가 대부분인 데다 박제가와 이덕무를 비롯해 당시 연암이 교류한 주변 인물들에 대한 매우 솔직한 평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박희병 교수는 "이 편지들을 통해 연암의 꾸미지 않는 맨얼굴을 대면할 수 있다"면서 "이런 특성 때문에 아마도 이들 서간은 연암집에 수록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편지에 나타난 연암의 박제가와 유득공에 대한 평가는 한편으로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으면서도 그들의 인간성을 비난하는 대목이 띄고 있다. 세 번째로 수록된 '큰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연암은 재선(在先), 즉 박제가가 중국에서 나온 시필(詩筆)을 새로 입수했음에도 그것을 지보(至寶)로 여겨 자기에도 빌려주지 않으려 한다고 하면서 이런 박제가를 "망상무도(罔狀無道)하다", 즉 "꼴 같지도 않게 무례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유득공에 대해서는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전에 유득공에게 화포 두루마기를 빌려주었으니 이를 냉큼 찾아오라는 내용이 보이는가 하면,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침잠하는 기상이 적어 단지 책을 빌려 박식을 뽐내기만을 좋아할 뿐이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들 서간문에는 연암이 글을 지은 과정에 대한 귀중한 증언들을 담고 있다. 왕명에 의해 편찬해야 하는 글에 대해서도 박제가나 유득공에게 초고를 부탁하는가 하면, 아예 대필을 시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적당한 중국고전에서 좋은 문장을 따다가 자기 문장으로 삼는 소위 표절 행위를 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그런가 하면 5번째 수록된 역시 큰아들에게 부친 편지에서는 손자를 낳은 며느리 산후조리를 위해 "산후 복통에는 모름지기 생각나무를 달여 먹여야 하니, 두 번 복용하면 낫는다. 이는 네가 태어날 때 쓴 방법"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고추장을 손수 담궈 아들들에게 보내주었는데도 그것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아무런 품평이 없는 아들을 득달하는 장면도 있고, 과거시험 볼 때 글씨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조언하는 모습도 등장하고 있다. 이 편지들은 연암 친필이라는 점에서 그의 서체를 연구하는 획기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정민 교수는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